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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모험…일탈… 철길, 그 수평에의 지향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7-07-12 02:01 게재일 2017-07-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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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기획시리즈 ⑶<bR>홍명섭전 `Running Railroad`
▲ 홍명섭作

대구 봉산문화회관의 기획시리즈전인 기억공작소의 올해 세번째 작가인 홍명섭 작가는 고정된 가치와 개념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예술의 영역을 구축해온 중진이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홍 작가는 1970년대 말부터 관념화되고 의식화된 개념들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뒤집는 행위로서 미술을 지향해왔다. 그의 예술 언어는 개념의 형식에 대한 추종이 아니라 개념을 초월하는 지점에서 감각과의 사투를 통해 사물과 예술이 지니는 의미를 구축하고 해체하는 기능에 충실해왔다. 그러한 미학적 행위는 개념적 미술로서의 언어·말과 해프닝, 퍼포먼스, 회화, 조각, 미디어 아트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으로 발현돼 왔으며, 결론적으로 특정의 언어로 규정될 수 없는 주관적인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돼 나가는 특징을 지닌다.

오는 9월 10일까지 4전시실에서 열리는 기억공작소 전에서 선보이는 `Running Railroad`는 수평을 지향하는 오랜 예술 의지를 담은 설치 작품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눈높이 정도에서 무심하게 시작되는 길이 27m정도, 폭 5㎝ 정도의 검정색 종이테이프 2가닥을 평행으로 이어 붙여 칼로 그려내는 철길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두 개 선의 철길로 출발해 흰색 전시실 4벽면을 수평으로 횡단하면서 중간 벽면쯤에서 하나의 철길로 합쳐지고 다시 슬며시 나눠져 두 개의 철길로 마무리되는 이 이미지는 두께가 없으니 그림자를 찾을 수 없고, 별스럽게 가치를 꾸미지 않아 소박하며, 특별히 예술적 작동의 의미를 담은 것 같지 않은 그런 홍명섭만의 유머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흑백의 격한 명암대비에 의한 눈의 어른거림과 함께 우리의 기억을 일깨우는 환경으로도 작용한다.

홍 작가는 이에 대해 “철길 이미지는 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미지에의 동경과 같은, 비약이 없는 미지로의 표면장력, 문명과 혁명, 광야와 개척, 모험과 일탈, 유혹과 외경, 만나고 헤어짐, 심리적 방황 그리고 속도 등을 일깨우는 몽환적 모티브인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작품은 관람객이 입구에 놓인 여러 켤레의 무쇠슬리퍼를 신고 레일 패턴의 테이프 드로잉을 따라 걷게 된다. 관람객은 걸을 때마다 바람 소리 등 다양한 소음을 들으며 시지각적으로 새로운 체험을 한다. 이는 몸과 분리된 듯한 시각체험을 통해 공간감의 혼란을 일으키고, 시각경험이 몸과 밀착된 사실임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다.

홍명섭의 작품세계를 지배하는 일관된 미의식은 `수평`에 대한 지향이다. 수직을 향한 서구 문명의 개념들에 대척되는 수평에의 의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상태의 평온함과 해방감을 기저로 하는 동양의 문화와 정서를 상징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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