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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대 `꼼수`

등록일 2017-06-12 02:01 게재일 2017-06-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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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친구가 되기로 서로 약속한 나귀와 여우가 숲 속에서 무서운 사자를 만났다. 이때 여우가 사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저 나귀를 잡게 해줄 테니 나는 살려 달라”고 간청한다. 사자가 “알았다”라고 하자 여우는 나귀에게 돌아와 “살아날 방법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꾀어서 웅덩이에 빠트린다. 그러자 사자는 웅덩이에 빠진 나귀는 나중에 잡아먹기로 하고 여우부터 먼저 물어뜯는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나귀, 여우 그리고 사자`의 줄거리다. 해묵은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문제가 또다시 국내는 물론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 사이에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드 미사일 4기 추가 반입이 국방부 보고에서 누락된 것을 알게 된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발표로 시작된 논란은 일파만파다. 국방부 정책실장이 직무에서 배제되고, 청와대는 `환경영향평가` 카드로 미사일 추가 배치에 빗장을 걸었다.

문 대통령이 사드부지 70만㎡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지시함으로써 최소한 1년 가량은 온전한 배치가 불가능하게 됐다. 파장은 미국 정치권에까지 닿아 이런저런 수상한 뉴스들이 불거져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드보고 누락 청문회`까지 거론하며 을러대는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배치 강행을 주장하고 국민의당은 문 대통령에게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청와대는 국방부가 전체 공여 부지를 33만㎡ 이하로 축소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쪼개기 공여` 꼼수를 부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논란이다. 사드 부지가 환경영향평가법이 정하고 있는 `국방부장관이 군사작전의 긴급한 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예외규정에 해당되느냐 아니냐 하는 관점이 핵심이다

국방부가 `쪼개기 공여` 꼼수를 부렸다면, 청와대는 `보고누락` 까발리기에다가 `환경영향평가` 꼼수를 동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판국을 `긴급`으로 보느냐 아니냐의 차원에서 곧장 판별이 될 문제다. 국방보다도 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국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해답은 자명하다.

`사드`는 본질적으로 동맹국 미국의 군대가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전략자산이다. 미국은 북핵 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전략폭격기나 핵잠수함, 항공모함을 잇달아 한반도 주변에 모으고 있다.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도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니 기다리라고 해야 비로소 이 나라가 주권국가로서의 자존심과 체면이 살아나는 것인가. 도대체 지금 한반도는 위기인가 아닌가.

정말 코믹한 것은 중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레이더`가 이미 성주골프장 미군 사드포대에서 가동 중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드포대에 미사일을 마저 배치하는 일만 왜 문제가 되는가. 사드배치가 미국본토 방어용이기 때문에 용납이 안 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미국을 혈맹으로 인정하지 않는 큰일날 논리다.

북한의 야포와 다연장 로켓포 1만3천여 문의 존재를 거론하면서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사드`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북한 핵 공격을 막을 속 시원한 대안을 따로 들어본 적이 없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한미동맹`의 균열이다. 미국의 야릇한 움직임이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외교는 일호차착을 허용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펼쳐진다. 괴팍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장사꾼 꼼수기질을 발휘해 느닷없이 `미군철수`를 외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정말 무시할 수 있나. 어쩌면 우리는 지금 부질없는 공론으로 두 개의 벌집을 한꺼번에 잘못 건드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금의 형편으로 보아 대한민국이 이솝 우화 속 사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나귀인가 여우인가. 아니, 사자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서 이럴 때 나귀와 여우는 정녕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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