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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과 `통합`의 협곡

등록일 2017-05-15 02:01 게재일 2017-05-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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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미래학(Futurology)은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이다. 현실도피의 무책임한 엉터리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대사회 속에서 미래사회를 시사하는 변화의 조짐을 찾아낸다는 의미에서 `미래학은 현재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국가사회의 미래를 진단하고 개척해가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미래학은 정치 영역의 핵심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 기술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는 사시사철 `과거` 논란만 난무한다. 그 동안 이 나라의 정치는 정적(政敵)의 지난날 언행을 놓고 괘발새발 까발리는 험담경쟁이 전부였다. 무릇 선거기간 중에는 엄청난 `상대방 쓰레기통 둘러엎기` 전쟁이 벌어진다.

짧고도 긴 대통령선거의 터널에서 승자가 된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포석이 한창이다. 예상했던 대로 문 대통령의 밑돌 깔기에는 `파격` 이미지를 심으려는 의중이 강하다. 당선 직후 야당당사 방문, 대중들과 쉽게 어울리는 대통령, 까칠한 진보교수의 민정수석 기용, 참모들과의 격의 없는 업무스타일 구축 등 일거수일투족이 흥미로운 뉴스가 되고 있다.

신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하늘을 찌른다. 각자의 소망에 자신의 신산한 삶의 앞길을 열어주리라는 절박함이 실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야권과 언론의 지엽적 꼬투리잡기는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갓 출범한 정권에 대한 패자의 감정발산 이상도 이하도 아닌 쩨쩨한 티 뜯기는 별반 의미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신임 대통령의 행보가 `보여주기` 식에 머무르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은 슬며시 생긴다. 형식은 내용을 능가하지 못하고, 내용은 이미지를 웃돌지 못하고, 이미지는 진정성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진실만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진심이 배제되고 지속가능성이 희박한 `쇼`는 오히려 부작용만 남긴다는 사실을 잠시도 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적폐청산`은 한방(韓方)의 부자(附子)처럼 자칫 정쟁촉발의 맹독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약제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관찰은 `적폐청산`과 `통합`이라는 두 가지 과제의 충돌가능성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과연 `적폐청산`이 정상세포는 살리고 악성 종양세포만 선별적으로 파괴해내는 기적의 항암제(抗癌劑)로 작용할 것인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문 대통령은 제19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인들을 자주 만나겠다는 약속도 제대로 실천된다면 괄목할 업적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문 대통령은 남의 쓰레기통을 뒤져 갈등의 불씨를 만드는 일에 능란한 `법 기술자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에게 방향타를 온전히 맡겨서도 안 된다. 선거 도중 불거져 나왔던 이해찬 의원의 `보수 궤멸` 발언의 파장이 얼마나 깊이 박힌 비수인지를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의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상기한다. 그는 27년여 간의 옥고를 치른 뒤 감옥을 나서며 “나는 여기 선지자로서가 아니라 국민인 여러분의 겸손한 종으로 섰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벨평화상까지 받고 대통령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영국인도 아니면서 영국의회 중앙 홀에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인물 1위`의 자리에 동상으로 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임기 내내 `과거`에 발목이 잡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부디 `적폐청산`과 `통합` 사이의 협곡에 애꿎은 민생이 갇히는 가혹한 모순이 목도되지 않기를 참마음으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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