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맨`이라고 불리는 세기의 스프린터가 있다. 지난해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100m·200m 3연패 대기록을 세운 자메이카의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Usain St. Leo Bolt)다. 구름관중을 몰고 다니는 그가 참가하는 모든 육상경기에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최대 관점은 신기록이 아니라 볼트를 이길 선수가 나올 것이냐 아니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최고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5·9장미대선이 1주일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전이 오히려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망론`을 위협하던 안철수의 지지세가 한풀 꺾이면서 뜨거운 각축양상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곧 여론조사 금지기간에 들어서서 `깜깜이 선거`가 시작되면 각 진영의 주장만 난무할 뿐 조금이나마 여론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창틈마저 사실상 차단된다.
5·9장미대선을 재미없게 만드는 요인은 처음부터 있었다. 선거판 자체가 애초부터 대통령 탄핵으로 비롯된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담론과 가설들이 춤을 추면서 갖가지 경우의 수가 운위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초기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를 찍어야 옳으냐고 묻는다. 유권자들은 여전히 헷갈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선후보 TV토론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지난 4월13일 SBS TV토론의 시청률은 1부 11.6%, 2부 10.8%로 집계됐고, 19일 KBS 1TV가 단독 생중계한 토론의 시청률은 26.4%였다. 23일 밤 7개 채널에서 생중계한 토론의 시청률은 38.477%, 28일 밤 생중계된 토론의 시청률이 31.199%로 나타나 나름대로 가능성은 있다. 온통 상대방의 허물을 까발리려고 허둥대는 생방송 토론을 지켜보자니 선거전략 컨설턴트 석종득의 이론이 떠오른다.
그는 저서 `선거 전략 & 선거 캠페인`에서 “방송토론은 득점을 위한 찬스가 아니라, 실점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일종의 장애물 경기”라면서 “주도권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토론을 일방적으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무작정 물어뜯다가 자신의 이(齒)만 부러지는 우스꽝스러운 연상이 자꾸 어른거린다.
이 시점에서, 선거판을 완전히 뒤엎을 변수가 아직 남아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전문가들도 횡설수설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엄중한 현실이 새로운 가설을 차단하고 있다. 물론 선거판을 이렇게 맥 빠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다른 소망을 품게 할 만큼 두각을 나타내는 주자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판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기울어진 운동장` 꼴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후보자들은 어떤 심사일까. 지지율이 사뭇 저고도비행 중인 후보들은 정말 유세장 장담처럼 유권자들이 막판에 자신에게 몰표를 몰아줄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관전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그럴 개연성은 별로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미 선거결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선거 이후를 더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면 대통령선거는 물론, 각종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끝내 뜻을 이룬 위인들이 없지 않다. 정치인생에서 낙선은 그야말로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다. 바꿔 말하면,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필승의지를 곧이곧대로 읽는 것은 오류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제아무리 우사인 볼트가 출전하는 육상경기라 하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승부욕을 지레 접은 모습으로 경기에 임한다면 흥미로울 까닭이 없다. 전략도 어림없고 전술도 마땅찮은 마당에 자중지란까지 겪고 있는 속 타는 주자들의 동동거림이 안타깝다. 근년 들어 번번이 틀리기만 해온 `여론조사의 실패`를 마지막 희망으로 품어야 할까. 대선 드라마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일은 이제 오롯이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겨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