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자 이철우는 저서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에서 실연(失戀)을 당한 사람의 행동을 명료하게 분석한다. 그는 실연 이후의 심리상태를 `미련`, `실연상대의 거절`, `실연으로부터의 회피` 등으로 구분한다. 가장 흔한 행동유형은 `미련`이다. `미련`은 실연 상대에 대한 정이 사라지지 않고 희망적 관측(Wishful Thinking)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기가 매일 쌓아올린 환상의 벽을 허물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연상대의 거절`은 적개심을 품고 몸부림치는 `적의`, 사진·편지 같은 것을 태우거나 찢어버리는 `관계해소` 따위의 행태를 보여준다. 바람직한 반응은 `실연으로부터의 회피`다. 이별이 불가피했다거나 연애가 계속됐다면 불행했을 거라는 자기합리화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긍정적 해석`, 다른 이성을 만나는 행동을 보이는 `치환`, 스포츠·레저·공부 등으로 실연의 고통을 잊는 `기분전환` 등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검찰은 이달 17일 대통령 선거운동 공식 개시 전에 박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기기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구치소를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지속하는 중이다. 국민들의 관심은 박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에서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에 쏠려 있다. 아직도 똑 떨어지는 `진실`을 들어보지 못한 보수민심은 복잡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선판세에 나타나는 보수민심은 여전히 유랑(流浪) 중이다. 반기문에게 쏠렸던 보수민심은 황교안 쪽으로 흘러갔다가 안희정을 거쳐 안철수 언저리에 기웃거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방향을 잃고 표류하면서 거듭 헛물만 켜고 있는 보수민심은 주류에서 밀려나 `캐스팅보트` 역할에 몰리는 굴욕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바야흐로 보수표심은 차악(次惡)을 골라내야 할지도 모를 곤경에 처했다.
5·9대선 표심 향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약진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양강구도가 형성되면서 양 진영의 흙밭싸움이 치열하다. `국정농단` 여파로 한껏 토라진 다수 민심은 좀처럼 보수후보들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친박 세력`을 단단히 업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시선은 아직 서늘하고, 터무니없이 `배신자` 이미지를 뒤집어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또한 악전고투다.
TK 민심이 지금처럼 복잡해진 적은 없었다. 한마디로 뭉뚱그려 말하자면 예기치 않게 갑자기 실연당한 연인의 처지 딱 그 양상이다. 많은 지역민들이 아직도 `미련`의 족쇄에 발목이 잡혀 있다. 무한애정을 쏟아온 히로인이 결코 그럴 리가 없다는 부정의식에 묶여 있다. `희망적 관측`의 미몽에서 좀처럼 깨어나지 못한 채 뭔가 거대한 모함과 협잡에 휘말려 있으리라는 음모론마저 성성하다.
TK정치가 `보수의 메카`이자 `한국정치의 중심`이라는 명예를 되살려내려면 지금의 퇴행적 몽상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사태를 직시하는 혜안과 현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발휘돼야 한다. 진보정치와의 전선을 좀 더 간명하게 만들기 위해서 용단을 내릴 수도 있어야 한다. TK정치의 위대성은 바로 극적인 상황에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담대한 결단을 실행함으로써 발휘됐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없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이번 대통령선거는 정상적인 선거가 아니다.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미련`의 뻘밭에 주저앉아 침울할 여유가 없다. `긍정적 해석`이든 `치환`이든 다시 달려갈 힘의 원천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라를 위한 바른길을 닦아내기 위해서는 때로 `양보`의 덕목이 먼저 필요할 때가 있다. 변화무쌍하게 전개될 선거양상 속에서 새로운 선택의 갈래를 찾아내야 한다. TK정치가 이렇게 무기력한 역사를 써내려가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