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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위한 변명

등록일 2017-04-07 02:01 게재일 2017-04-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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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인간은 대략 9천년 전부터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와 말, 염소와 양, 돼지와 닭이 대상이었다. 말의 기동성(機動性)이 유용한 도구임을 확인한 인간은 초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일상화한다. 그때 이후 기동성이 떨어지는 닭과 돼지는 유목민들의 삶에서 멀어진다. 오늘날에도 돼지와 닭은 정착생활을 영위하는 농촌지역에서 기르는 가축이다. 툰드라 지역에서는 이들 가축 대신 추위에 강한 순록(馴鹿)을 기르며 고단한 삶을 인도한다.

유목민들은 가축에서 나오는 가죽과 고기를 가지고 정착민들이 거주하는 오아시스 같은 농경지역으로 간다. 거기서 보리와 수수 같은 곡물을 받고 고기와 가죽을 넘겼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교환이 시작된 것이다. 농경민과 유목민을 연결하면서 상품교역을 직업으로 삼는 상인이 출현한다. 고대(古代)의 상인들이 이동수단으로 삼은 것은 말과 낙타였다. 이집트와 서남아시아에서는 단봉낙타가, 중앙아시아에서는 쌍봉낙타가 쓰였다고 전한다.

이런 삶의 양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목에 기대 일정지역을 순회하면서 살아가는 방랑자들이 있다는 얘기다. 19세기 이후 인간은 민족과 국가, 국경 같은 개념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적잖은 수의 사람들은 수천 년 이상 국경과 국가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 얼마 전에 타계한 예브게니 예프투센코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그가 시베리아에서 만난 노인은 레닌도 혁명도 스탈린도 전쟁도 모른 채 살았다고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어제오늘이 낯설게 대면하는 광속의 시간대에 나는 가능하면 천천히 살아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속주행을 즐기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되, 울안에 지어놓은 닭장에 수탉 한 마리와 암탉 네 마리를 넣었다. 모두 일년생 동갑(同甲)이다. 수탉만 흰색이고 나머지는 황갈색이다. 닭을 키우면서 몇 가지 특성을 알게 되었다. 닭장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끝내 알지 못했을 닭의 특성이라니?!

암탉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는 듯하다. 수탉 옆에서 활보하면서 주어진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최고권위의 암탉이 있다. 그것은 성질 머리가 사나워 다른 암탉들을 무시로 공격한다. 뾰족하고 강력한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대고 뒷목을 물어뜯는다. 암탉의 지극한 공격성을 본 것은 처음 일이다. 조선시대에 베개머리 송사(訟事)로 유명했다던 궁중 여인들의 권력을 향한 암투가 연상되는 장면이 아침저녁으로 펼쳐지곤 한다.

서열 2위의 암탉도 나머지 두 마리 암탉을 지속적으로 공격한다. 모이를 쪼아 먹다가도 물을 먹다가도 느닷없이 공격성을 발휘한다. 서열 3위의 닭도 제가 받은 상처와 슬픔을 마지막 서열의 암탉에게 남김없이 쏟아 붓는다. 수탉을 제외한 네 마리 암탉은 일정한 위계질서에 따라 공격하고 공격을 감내(堪耐)한다. 흥미로운 점은 공격당하는 암탉이 최소한도의 저항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묵묵히 참거나 멀찌감치 달아나는 게 고작이다.

수탉은 그런 암탉들의 싸움판을 바라볼 뿐 일체 개입하지 않는다. 유정란을 생산하기 위한 교미에 분망할 따름이다. 그것들이 보여주는 공통의 습성은 온종일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든 물이든 땅속의 벌레든 풀이든 끝없이 이곳저곳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그리고 배설의 쾌감을 거리낌 없이 발산한다. 집안의 청결에 대해서 아무 관심도 없다. 먹이통과 물통에도 배변하는 무모함과 객기를 드러낸다. 닭은 생각보다 청결하지 않다.

반면에 녀석들은 근면하게 알을 낳는다. 가장 여린 닭만 2~3일에 흰색에 가까운 알을 낳고, 나마저 닭은 황갈색 알을 날마다 생산한다. 수탉도 아침의 여명이 닥칠 무렵이면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한다. 이래저래 울안에는 닭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하고 정겹다. 정물화(靜物畵)가 부분적인 변화를 얻은 셈이다. 내일이면 배꽃이 피어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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