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안과 밖이 모두 불편하다. 병이 깊은 환자인 양, 떨치고 일어서기까지 꽤 오래 걸리지 싶다. 탄핵 정국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처입은 시민들의 마음은 이후에라도 어떻게 보듬고 세울 것인가. 큰 나라들 사이와 남과 북의 긴장 가운데 힘없이 던져진 국민들은 어느 켠이 맞는 지 가늠조차 버겁다. 하루하루의 삶마저 녹록지 않은 처지인데, 도무지 갈피를 못 잡는 나라의 모습에 들려오는 소식들마다 가슴이 철렁거린다.
한 가지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 있다. `소통`의 가능성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누구도 뉴스를 만들어 전달하는 일을 독차지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뉴스를 접하고 소비하는 시민들의 삶이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15세기 활자술과 종이의 발명이 소통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꾸었겠지만, 20세기에 인류가 만난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은 그 소통의 가능성을 모든 사람에게까지 열어 주었다. 디지털 이전의 세상에도 소통의 기술이 존재했지만, 그 역할은 사실 언론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위임된 상태로 진행되었다. 힘과 돈, 조직과 능력을 가진 이들이 독과점식으로 꾸려온 소통이 완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디지털 세계는 그들 뿐 아니라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소통`의 도구들이 주어졌으며 그 주체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이름하여, `소통의 혁명`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기술의 발전과 소통의 확장이 오늘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된 환경에서 어쩔 수 없는 세대 차이는 다소 있겠으나, 이제는 모든 사람이 디지털 환경에서 핸드폰과 SNS를 어려움 없이 누리게 되었다. `정보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누구라도 그 정보를 조작하거나 독점하는 일이 앞으로는 쉽지 않을 모양이다.
개인의 습관 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버린 디지털환경은 곧이어 오늘날 기업환경과 경제환경을 바꾸어 버렸고, 법과 제도도 바꾸어 가고 있는 중이다. 네이버와 구글, 그리고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은 오늘 세대의 기본적인 생활여건이 되지 않았는가. 기술이 사람들을 바꾸고, 그 사람들과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기업들이 바뀐 다음에, 법과 제도가 응답하듯 바뀌어 간다. 교육과 문화, 미디어도 허겁지겁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가 예견하였던 `지식의 혁명`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도래한 모양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이 같은 흐름을 잘 읽어 내고 있는가. 이미 가져버린 습관이 시사하는 바와는 다르게, `소통`을 과장이나 은폐, 조작이나 독점, 눈가림이나 부풀림으로 이해하고나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할 일이다.
시대는 이미 돌아가지 못할 강을 건너와 버렸다. 서양 속담이 `Honesty is the best policy.`라고 했던가. 오늘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정직성과 진정성으로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소통혁명은 한 톨의 거짓도 허용하지 않는다. 보는 눈이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읽어 내리는 양심들이 도처에 번득인다. 당신의 거짓과 위선은 설 자리를 이미 잃었다. 당신의 진정한 시도는 이제 빛을 발할 것이다.
탄핵도 지나가고 사드도 흘러간 자리에 우리에게 남을 것은 수많은 개인들과 그 모든 개인들의 눈과 귀일 것이다. 보다 투명하고 보다 진정어린 `소통`만 남아 사람들 사이 사이를 채워 줄 터이다. 구부려 알려진 일들이 반듯해 질 것이며, 부풀려 전해진 것들이 제 자리를 잡을 것이다. 혹 당신이 이를 아직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제라도 당신의 손 위에 들려있을 핸드폰을 내려다 볼 일이다. 당신을 속일 수 있을까?
기술로 다가온 `소통의 혁명`이 뜻 밖에도 `민주주의의 꿈`을 당겨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