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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소유

등록일 2017-02-10 02:01 게재일 2017-02-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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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래 시조시인
몇 년 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을 흔히들 무소유로 살다 가신 분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분처럼 `많은 것`을 가졌던 사람도 드물 거라는 생각이다. 부동산으로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손수 지은 암자가 있었고, 자신의 명의로 등기를 하거나 주지의 자리에 앉지는 많았지만 길상사란 절을 창건하기도 하였다. 그보다 더 부러운 것은 강원도 산골의 오두막인데 집이야 작고 초라했지만 인근 일대의 임야는 그 가치를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재산이었다. 그 산과 계곡이 누구의 명의로 되었건 철따라 피고 지는 초목이며 온갖 벌레와 짐승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햇빛 달빛 별빛에다 고요와 어둠까지, 그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져 사는 동안은 스님의 소유나 다름이 없었다.

스님의 동산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많은 저서의 판권이나 인세가 문제가 아니라 수백만 독자와 스님을 따르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재산이었다. 법정스님이 보여주신 것은 그러므로 `무소유`가 아니라 `참소유`였다는 생각이다. 참소유란 올바른 소유요 진정한 소유라는 뜻으로 내가 만들어본 말이다.

무엇을 잘 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의 진가(眞價)를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알아야 소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진가란 왜곡된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말한다. 산과 들을 단순히 토지나 임야의 개념으로만 따지는 것은 본질적인 가치평가가 아니다. 그것에서 일어나는 온갖 자연현상이야말로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물품도 그렇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작품도 그것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에겐 한갓 쓸모없는 물건에 불과할 뿐이다.

참소유란 진정한 가치를 소유하는 것인즉 진가를 모르는 사람이 참소유에 이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록 그 진가를 안다고 해도 꽁꽁 숨겨두기만 해서는 온전한 소유가 아니다. 금고 속에 넣고 이중삼중 자물쇠를 채워두는 것은 보관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진가를 알았으면 그것을 용도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제대로 된 소유다. 돈을 주고 사서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해 놓았다고 산과 들을 소유한 것이 아니며 금고나 은행에 쌓아만 둔 돈은 종잇장과 다를 게 없다. 참소유란 진가의 발견이자 활용이며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기도 한 것이다.

무엇에건 연연하거나 집착하는 것은 참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유 당하는 것이며,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에 집착하고 연연하는 것은 그것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는 것이다.

가장 완전한 소유는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아일체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유라 할 것인데, 그것은 이미 종속의 관계를 벗어난 것이니 소유라는 개념자체가 소멸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주만상은 종속이 아닌 유기적인 관계로 형성되어 있고 사람도 그 일부일진대, 사람이 무얼 소유한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요 망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무소유란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새길 수도 있겠다.

요즘 우리나라를 온통 뒤끓게 하는 국정농단 사건도 부당한 방법으로 필요이상의 것을 소유하려는 헛된 욕망이 빚어낸 사건에 다름 아니다. 우주만상은 내가 태어나가 전에도 있었고 죽은 후에도 영원할 것인데 잠시 맺혔다 사라지는 이슬 같은 인생이 무얼 소유하겠다고 아등바등 하는 게 얼마나 가소롭고 어리석은 노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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