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아파트 재개발 현수막이 걸렸다. `이주가 늦어지면 사업이 지연되므로, 이주 기간 내에 이주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 라는, 이사를 권유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걱정이 앞섰다. 모두가 이사를 하고 나면 나무들은 어떻게 될까? 나무들은 심어지면 그때부터 온갖 힘을 다해 살아낸다.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폭풍우와 눈보라를 이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파트가 지어지고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나무들도 모두 옮겨 심어지겠지? 몇 해 전 사무실 마당가에 서 있던 이십여 그루 향나무를 옮겨 심을 일이 있었다. 생긴 모양이나 수령으로 보아 비싼 가격에 팔릴 거라 생각했지만 몇 군데 농원주가 와서 보고는 그냥 가버렸다. 나무를 옮겨 심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싼 값은커녕 공짜로 준다 해도 가져가지 않았다. 베어버리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당을 사용해야하기에 비용을 부담하고 나무를 옮겨 심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향나무의 터전은 그 땅을 이용하려는 나 때문에 바뀌게 된 것이다. 나무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곳의 시공간은 나무의 것이다. 나무 목(木)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품고 서 있는 모양이다. 나무를 옮겨 심는 날, 나는 막걸리를 넉넉히 준비했다. 일하는 분들의 새참으로도 준비했지만 나무들의 안녕과 헤어짐을 위해 술을 붓고 싶었었다. 나무에게 강제 이주되는 상황을 잘 받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는지도. 그렇게 나무가 내어준 자리에 터를 잡고 살았었다.
개발은 나무의 터전을 바꾸기도 하지만 시공간의 풍경도 바꾸어버린다. 휑하다. 창포사거리의 풍경이 바뀌었다. 아파트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사라졌다. 울타리로 이용된 나무들과 화단에 정원수로 심어졌던 나무들이 한 그루도 남지 않고 베어졌다.
옮겨 심을 시간도 충분히 있었는데 베어버리는 것만이 능사였나. 시공간의 주인은 나무의 것인가? 아파트 재개발 업자의 것인가? 이주 기간 내에 이주할 수 있도록 적극협조 하지 않았다는 이유의 형벌치곤 너무 가혹하다. 나무를 옮겨 심는 것보다 베어 버린 선택. 인간의 이기심으로 합리화된 손익계산 방법이다. 예부터 이 터에서 살았던 나무들의 시간들을 경제 논리로 계산했다니. 재개발이 시작되면 가난한 누군가는 또다시 변두리 전셋집을 전전할 것이고 딱지꾼들은 웃돈을 얹어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지만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왔던 나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건축법에는 대지의 조경에 대한 법령이 있다. 건축물을 신축하고 사용승인을 허가받는 절차에 조경에 대한 법령을 정해 놓은 것이다. 건물 사용승인 절차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면 건물을 철거할 때도 나무를 옮겨야하지 않는가? 준공 후 조경에 대한 관리는 이뤄지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내는 것은 나무의 몫이라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우리가 나무에게 주는 보답치곤 너무나 잔인하다. 아파트를 짓고 자연과 친화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는데 재개발을 할 때는 누구의 이익을 생각한 것인가? 베어내어진 나무들이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하겠지만 옮겨 심는 것이 법으로 정해졌다면 이렇게 무참하게 베어냈었을까?
나무들이 사라진 건물들이 흉물스럽다. 철거된 자리에 다시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베어낸 자리에 나무를 다시 심는 우리들이다.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명목으로 나무를 옮겨 심고 그 나무들을 통해서 다시 위안을 받고 살아갈 것이다.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들의 안부를 듣는다. 도심 속 자연친화적 아파트의 광고 현수막이 곧 걸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