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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 관하여

등록일 2016-12-09 02:01 게재일 2016-12-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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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1990년대 초반 노래방을 처음 찾았을 때 감회(感懷)가 떠오른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으면 한 곡을 부를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함께 유학했던 친구와 번갈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이런 기계도 있구나, 싶었다. 그때 나는 얼마 가지 않아서 노래방이 몰락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엉터리 추측이었고, 노래방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도구로 제 구실을 하고 있다. 기쁨과 슬픔을 표출할 때 노래는 상당히 요긴한 방편(方便)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적 사실 가운데 하나는 조상들이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는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그런 대목이 있다고 배웠다. 그런 까닭일까, 현대 한국인들 역시 음주가무에 능하다. 나라가 어찌 돌아가는지 무관하게 공영방송에서는 여전히 `전국노래자랑`프로그램이 목하(目下) 성황 중에 방영되고 있다. 각종 공중파는 이에 질세라 허다한 가요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 노래 못해서 목이라도 맨 사람들 같기도 하다.

엊그제 오랜만에 노래방에 들렀다. 재작년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후 나는 만 1년 넘도록 노래방 출입을 하지 않았다. 단원고 학생들과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동행했던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불평이었다. 하지만 나는 1년 넘도록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분들은 얼마나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노래방에서 내가 부르는 노래들은 애상이 깊이 각인된 우울하고 구슬픈 곡들이다. 속도가 빠르고 경쾌하며 밝은 노래는 거의 불러본 적이 없는 듯하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달아오른 노래방 분위기를 처참하게 박살내는 원흉(元兇)이 되곤 한다. 그런데 어찌하랴?! 그런 노래들 말고는 부를 줄 아는 노래도, 부르고 싶은 노래도 없는 것을! “최신의 노래가 최대의 갈채를 받는다!”는 격언도 있다지만 이 나이에 무슨 신곡이란 말인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노래를 부르다 문득 목소리와 감정의 노쇠를 느낀다. 술기운을 빌려서 고성을 내지르곤 했는데, 신통치 않은 소리에서 허약해진 기미가 느껴진다. 온몸으로 발산했던 감정의 폭과 깊이가 좁아지고 얕아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하, 이것도 변해가는 모양이구나, 하는 나지막한 탄성(歎聲)이 절로 나온다. 나이와 더불어 찾아오는 감정의 둔화와 평정심의 강화는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열패감 같은 것의 감촉이라니.

나이 듦은 평정한 감정과 성숙한 지혜를 동반한다고들 말한다. 좋은 일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자신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출하는 것이 훨씬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짐짓 아닌 척하면서 불쾌한 감정을 감추거나, 즐거운 표정을 일부러 은폐하는 것은 그다지 온당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럿이 모여 각자의 개성과 감흥(感興)을 드러내는 자리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리라.

그럼에도 노래방에서 느낀 소회는 `나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의 문화적 도구를 상실(喪失)해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다. 이런저런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상을 엮어나가는 삶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만 같다. 슬픔과 우수 혹은 애수와 처연(悽然)함이 찾아온다 해도 그런 감정을 드러낼 방책 하나가 멀어지고 있음은 무척이나 아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보낼 것은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찾아든 노래방에서 새파랗게 젊었던 시절의 화사(華奢)하고 빛났던 지난날을 돌이키면서 적잖게 쓸쓸하고 허전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지금이 가장 젊은 시절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혹시 알겠는가?! 느닷없이 예전의 풍부한 정감(情感)과 소리가 홀연히 나를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하되 아쉽고 서운했던 시간이었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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