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병 호
자오선을 따라 건너는 사막
여섯 개의 황도를 따라
여섯 개의 조각난 태양이 돌고
얼굴 없이 달려온 아이의
부러진 손목에선 비늘들이 쏟아져
검은 부리의 짐승이 되어 날아올랐다
선인장 위에
난데없이 꽃 된 아버지가
천연덕스럽다
검은 꽃잎 속에 알몸을 심은 누이
아버지는 몹시도 누이를 사랑하신다
사방은 밝았지만, 해는 없었다 태양은 아버지처럼 아주 멀리서 기척만 만들고 바람 무거운 무화과가 심드렁히 제 살을 찢고 있었다
발갛게 익은 무화과 열매와 가난한 가족의 모습들이 겹쳐지는 풍경들이 낯설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시다. 시인의 몽상 속 풍경에는 가난의 흔적이 가득차 있다. 힘겹게 살아가는 생활을 시인은 환몽의 방식을 빌려 무겁게 표현하고 있다. 사방은 밝았는데 해는 없고, 검은색 꽃잎 속에 누이가 있다고 상상하는 부분들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