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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그려진 그림책

등록일 2016-11-16 02:01 게재일 2016-11-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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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남 호
그 그림책을 펼치면 배가 고프고

채워질 것 같지 않은 허기가 첫 페이지부터 몰려오고

몰려오는 허기 중 앞쪽의 싱싱한 허기부터 잘라먹고

잘라먹다 보면 토막토막 잘려진 철길이 줄지어오고

아무리 둘러봐도 주저앉아 쉴 만한 그늘은 보이지 않고

철길은 상한 엿가락처럼 시커멓게 휘어져 있고

어머니는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터널 쪽으로 달려가고

터널이 어머니를 허겁지겁 허겁지겁 삼키고 있고

비지땀을 흘리며 꿀꺽, 삼키고 있고

어머니가 이고 있던 목화솜 보따리만 뭉게구름처럼 떠 있고

솜을 타야 하는데, 저걸 타야 누나가 시집가는데

시인이 보고 있는 그림책 속의 이야기는 가난으로 점철되는 불행한 가족사이다. 모질게 따라붙는 이러한 결핍의 가족사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곤고하고 아픈 서사의 되물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시인>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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