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수 권
맑은 물 속에 비로소 내가 보인다
그 동안 어디를 그리 헤매었느냐
며칠 전 바람처럼 휩쓸고 온
유럽 천지는 괜찮더냐
가도가도 양파밭과 귀리밭과 밀밭뿐인
대평원의 초록에도 공황이 있고 공포가 있다니
지리한 하품과 권태가 있다니
초록의 심연에는 닿지 못하고 얼굴 없는 세상에
발이 먼저 가 닿는 망망대해
직소는 직소로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게 탈이다
송사리떼가 다시 발을 간지른다
맑은 물 속에 비로소 내가 보인다
달이 뜨면 안심하고
저 월명암까지 비껴 오르리라
평생을 감동적인 필치로 구수하고 정겨운 남도 서정을 담아내온 대표적인 서정시인인 송수권 시인은 작년에 타계하셨다. 고달픈 인생사에서 늘 우리네 삶의 힘겨움과 서러움, 한(恨)의 정서를 써 온 시인은 망설임 없이 똑바로 떨어지는 직소폭포를 보면서 걸어온 한 생의 여정을 돌아보며 자신에 대한 응시와 성찰에 이르고 있다. 남은 세월을 곧고 투명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시에 배어있음을 본다.
<시인>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