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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일기 1

등록일 2016-11-07 02:01 게재일 2016-11-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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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 혜
건너편 순대국밥집 지붕 위에 밤새 내려 쌓인 눈이 어린 계집아이 속살처럼 미답지로 반짝거린다 이런 날에는 내 무의식에도 폭설이 쏟아진다 언제 이렇게 찾아 오셨는가, 물으며 손 내밀 새도 없이 눈은 나리고 나린 후에야 떠지는 시린 눈(目)은 흰색을 노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곧 노파가 될 계집아이들이 깜깜거리며 지나가는 순대국밥집 앞유리문, 성에 두터워진 저 뿌연 문 안쪽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나 이런 날 시린 손끝은 더 이상 통증이 아니고 순대국밥집 굴뚝에서 아이들의 쉬어버린 입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시인은 눈 내리는 거리에서 순대국밥집 유리창 안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따스한 김이 피어오르는 그 안의 세상을 보면서 눈 내리는 서대문 거리를 걷는다. 폭설이 세상을 다 덮어가는데 호호 손을 불면서 국밥집 앞을 지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정겨움을 느끼고 창 안과 밖의 세상 풍경에서 푸근하고 아름다운 서정을 읽어내고 있다. 차가운 눈바람이 불어 세상이 아무리 살아가기 힘들다 하여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임을 느끼게 해주는 시인의 눈을 따라가본다.

<시인>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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