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지미술가 오쿠보 에이지<BR>`지구를 걷는다` 초대展<BR>봉산동~가창면 우록동까지<BR>김충선 발자취 시각화<BR>대구봉산문화회관 25일까지
일본의 저명한 대지미술가 오쿠보 에이지(72)는 아시아인으로는 드물게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대지미술작가다.
대지미술은 암석, 토양, 나뭇가지, 눈 등 자연 소재를 이용해 대지를 미술 작품으로 삼는 예술의 한 장르를 의미한다. 자연과 대지를 활용한 작품이 키워드다.
오쿠보 에이지는 일본과 여러나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그곳의 독자적인 풍토와 역사, 문화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40여 년 동안 미니멀 아트의 정신을 잇는 활동으로 알려진 오쿠보의`걷는 행위`는 시고쿠 지방 88개소 순례 길을 따라 걷는 프로젝트(1998~1999)와 일본 열도 홋카이도에서 돗토리를 거쳐 한국으로, 그리고 더 서쪽으로 나아가려 한 유라시아 아트 프로젝트(1999~2004), 또 에도 시대에 일본 전국을 행려한 하이쿠 시인 마츠오 바쇼와 2천개의 불상 제작을 기원하며 전국을 돌아다닌 승려 모쿠지키 쇼닌 같은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바쇼 2009, 모쿠지키 2005, 2007) 등 지속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자연 속에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보니 자연친화적이고, 무엇보다 자연을 파괴하거나 변형시키지 않는 제작방법이 미술에 대한 또다른 장르를 선보이면서 관람객에게 신선함을 안겨주고 있다.
대구 봉산문화회관이 다음달 25일까지 2층 4전시실에서 오쿠보 에이지 초대전을 열고 있다.
`지구를 걷는다`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오쿠보 에이지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일본에서 투항해와 우록동 근처에서 삶을 마감한 한국 귀화 일본인 김충선(1571~1642) 장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구시 봉산동에서 가창면 우록동까지 20.5km 길을 걸으며 작업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오쿠보 에이지는 김충선이 걸었던 길을 따라서 걷는`행위`를 통해 자신이 선택한 시간과 공간, 나아가 자신의 또 다른 미술적 태도를 나뭇조각, 사진, 드로잉, 흙 등으로 시각화한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오쿠보 에이지가 걷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작은 모니터 1점, 작가가 살고 있는 오사카의 종이지도 위에 평소 걸었던 경로를 그린 드로잉 1점, 일본 도쿠시마에서 남쪽으로 140km를 걷고 다시 서쪽으로 96km를 걸으며 끌었던 나뭇조각과 그 닳은 나무의 단면을 인장(印章)처럼 찍은 종이 작업, 그리고 길을 걸어가면서 채집한 오브제를 콜라주한 화첩이 보인다.
전시장 안으로 더 들어가면, 시고쿠의 길을 걷는 동안 채집한 오브제를 콜라주한 작고 오래된 책 10점과 지도 드로잉 1점이 있다. 또 정면 벽과 그 맞은편 벽면에는 130×87cm 크기의 사진작업이 보이는데, 작가가 촬영한 우록동의 자연풍경 사진 위에 현장에서 채취한 흙으로 `수평`과 `수직`을 상징하는 사각도형을 드로잉한 것이다. 이 드로잉의 오른편 벽에는 봉산동에서 우록동까지 걸어가며 줄에 매어 끌었던 나뭇조각 2점과 그것이 닳기 전·후의 단면을 인장한 종이가 있다. 그리고 우측 아래에는 걷는 도중에 채취한 흙과 나뭇잎을 콜라주한 화첩이 1.5m정도 길이로 펼쳐있다. 또 우록동까지 걸으며 채집한 깃털, 날개조각, 쇳조각 등의 오브제들을 작은 투명비닐에 담아 4m 정도 길이의 횡으로 벽에 설치한 작업도 보인다.
이 전시는 “`걷기`가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가?, 어떤 미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술가로서 자신의 `걷는 행위`는 우연히 거기에 있는 길을 그저 아무 의도도 없이 걷는 것이다. 이는 오쿠보가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행위 과정에서의 정신적 충만감과 그 시각적 흔적으로서 오브제의 물리적 변화와 만남을 채집하는, 즉 무작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려는 작가의 태도 그대로다. 이러한 작가의`걷는 행위`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수직`과 지구를 걷는`수평`이 융합(融合)하는 현재, 여기에서 자신의 실존(實存)을 상징한다.
정종구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작가의 `걷는 행위`와 나뭇조각을 끌 때의`저항`과 `진동`의 연동(連動)은 끈으로 연결된 작가의 몸에 그 상황의 시공간적 정보와 함께 기억되고, 함께 채취한 흙, 나뭇잎, 오브제들과 나뭇조각으로 남겨져, 김충선과 시바 료타로와 오쿠보 에이지가 공유하는 탁월한 충만함의 기억으로서 우리들 기억 속에서 또 다르게 재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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