믜리??괴리도 업시성석제 지음문학동내 펴냄·소설집
`믜리??괴리도 업시`는 고려가요`청산별곡`에서 인용한 것으로,“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 때 “믜리??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라고 한탄하며 청산으로 숨어들길 소망했던 어느 가여운 이가 있었다면, 2016년 성석제의 소설 속에는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그 어떤 대단한 환희나 통렬한 절망도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어떤 “사건” 혹은 “사람”과 맞닥뜨리는 인물들이 있다.
이 책은 2013년 12월부터 2016년까지 성석제가 집필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자, 작가가 1996년 첫 단편소설집`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출간 당시 제목`새가 되었네`)를 출간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새로운 소설집이다. 표제작`믜리??괴리도 업시`는`동성애`를 다룬 단편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너`로 지칭되는 인물은 동성애자다.`나`와 같은 고향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읍내의 큰 주물공장 사장 아들로 한때 귀공자 대접을 받았지만, 공장에서 큰 사고와 화재가 잇따라 아버지 사업이 폭삭 망하면서 거지 신세로 전락하고 주변의 멸시를 받는다. 여러 고난을 극복하고 나와 같은 대학에 들어오게 된 그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나는 그를 무시하려 하지만 자꾸 신경이 쓰인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미술가로 성공한 그는 몇 년 만에 동성애인과 함께 나타난다.
이 책을 열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소설`블랙박스`에도 모래처럼 허물어져가는 일상을 견디다가 돌연 나와는 너무 다른 인물을 만나 전기를 맞는 인물이 있다. `블랙박스`는 계간`문학동네` 창간 20주년 기념호에 발표됐을 때부터 `미친 소설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폭발하는 에너지로 가득한 작품이다.
/윤희정기자 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