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18:40. 남부터미널에서 성주로 가는 막차를 탔다. 두 시간을 달려 금강휴게소에 들렀다. 내 기억 속에 금강휴게소는 언제나 컸고 한편으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십여 년 만에 들른 이곳은 쇠락의 빛이 감돌았다. 과거에 비해 세상의 규모는 커졌고, 내 눈도 덩달아 변해 금강휴게소는 초라하게만 보였다.
21:50. 버스가 성주읍내로 들어섰다. 성밖(이건 지명이다)에서부터 조금씩 플래카드를 볼 수 있었는데 군청을 지나자 그 개수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버스에 내리니, 오는 것도 그렇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닌 이상한 비가 공기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군청에서 이마트까지 일자로 뻗은, 200m가 될까 말까한 중심거리엔 좌우로 혹은 위를 가로지르며 빼꼼한 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상가에도 어김없이 사드 반대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현수막의 문구는 “사드 배치 결사 반대”와 같은 점잖은 것도 있었고, “사드가 웬말이냐! 다 죽일라카나”와 같이 직접적인 것도 있었고, “참외 사먹겠다 헛소리 말고, 사드배치 참회하라”와 같이 재미있는 것도 있었다.
22:20. 저녁을 먹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긴 싫었다.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 들고 적당히 걷다가 숙소를 잡았다. 낯선 곳에서 홀로 잔을 채우며 처량했다. 술은 먹히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아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둘째 날
10:40.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보니 날은 부옇게 밝아왔고 비는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오락가락 하는 중이었다. 나 역시 오늘 갈지 내일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주섬주섬 옷을 꿰었다. 가까운 해장국 집에 들러 점심도 그렇다고 아침도 아닌 밥을 먹었다. 옆 테이블의 시커먼 아저씨 세 명은 소주를 네 병째 비우고 있었다. 술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질 모양이었다. 그들에게 물어 오늘도 집회가 있다는 것을 얻어 들었다. 내일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13:00. 성주초등학교를 따라 걸었다. 청사도서관에 가방을 내려놓고 군청을 한 바퀴 둘러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쉬는 날이긴 했지만 출근을 안 할 뿐 할 일은 많았다. 두어 시간만 일할 요량이었지만, 좀 채 일이 끝나지 않았고, 마침 비도 이제 마음을 정한 듯 마음 놓고 쏟아지고 있었다. 도서관 1층은 18:00까지였고, 2층은 22:00까지였다. 나는 1층에 자리를 잡은 관계로 문을 닫을 때까지만 머물기로 했다.
18:00. 밖에 나오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동방사지 7층 석탑 쪽으로 갈까 성밖숲으로 갈까를 고민하다 도서관 사서에게 물었다. 성밖숲이 좋다고 했다. 성밖숲은 성주읍을 돌아나가는 이천 옆에 있었다. 벚나무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무는 가히 숲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람했다. 이천을 따라 제2성산교까지 내처 걸었다. 이 다리를 건너 성산동 고분군을 지나 성산까지 올라갈 요량이었다. 고분까지 가는 길은 비닐하우스가 즐비했고 하우스는 대부분 비어 있었고, 간혹 하우스 바깥에서 짓무른 참외를 볼 수도 있었다.
19:00. 고분군에 이르러서부터 어둠은 내려앉았다. 고분에서 바라보니 성주읍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바로 뒷산, 해발 400미터도 되지 않는 저 성산에 사드를 배치하려고 했단다. 만약 거기에 사드가 들어왔다면 성주읍을 향하게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핸드폰 전자파도 찜찜한데, 사드는 안전할 것이라는 저들의 안일한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저들은 알까? 그런 결정을 한 저들은, 저들 스스로의 말처럼 외부세력이었다. 성산을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성주읍을 향해 걸었다. 어디에 줄을 걸쳤는지 알 수 없는 허공의 한 가운데에서 거미는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수습하고 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먹이도 거미도 고단해보였다.
19:20. 군청에 도착했더니 벌써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마이크를 들고 나오는 저분이 농민회 회장이신가? 시작 멘트가 참 재밌다. “잘 들리지예? 일단 감 한 번 질러 볼까예. `악으로 깡으로 사드 배치 막아내자.`” 사람들의 소리가 좀 작았다. “와 그래 심이 없노? 밥 안 묵었으예.” 사람들 와 웃는다. 55일째 집회가 계속 되는데도 사람들은 즐거웠다. 그들은 이제 사드 성산배치 반대가 아니라 사드의 전면적 철회를 외치고 있었다. 이 집회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축제처럼 번져가길 빌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밤은 고요했다. 이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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