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작가 이호철 선생

등록일 2016-09-08 02:01 게재일 2016-09-08 19면
스크랩버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무슨 일인가로 한국문학번역원에 갔더니 김성곤 원장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이호철 선생이 몹시 편찮으시다고 한다.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2년간 이런저런 일로 이호철 선생께 자주 연락을 드리고 찾아뵙기도 했다. 오래되지 않은 이호철 선생 인터뷰는 지금 이렇게 아프시다고 하니 선생 말년의 귀한 말씀으로 남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물론 선생의 쾌유를 빌고 있지만 세상 일은 알 수 없으니 마음이 괴롭다.

이호철 선생은 1932년생, 지금은 갈 수 없는 원산 출신이시다. 원산은 옛날에 덕원이라고 하여 원산 사람들이 자신을 덕원 사람이라고 할 때는 그 특유의 자긍심을 담고 있는 것이라 했다.

원산중학교와 원산고등학교가 일제 때부터의 명문이라고도 했다. 그때는 조선 전국의 3대 명문이었다고도 하는데, 학교 관계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선생이 원산고등학교 3학년 때, 아뿔싸, 6·25전쟁이 터졌다. 그때 학제로는 7월이 졸업이었다는데, 그래서 선생으로서는 졸업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을 맞아 학도병으로 전선에 끌려갔다고 했다.

전쟁이 전쟁이다 보니 선생은 전선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특히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갔다` 유엔군과 국군의 반격을 받고 퇴패할 때는 대오를 잃고 이리저리 흩어져 북상하다 끝내 포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은 때로, 아니 자주 운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때 극적으로 매형을 만났다고 했다. 포로를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국군에 소속되어 있던 매형이었고 때문에 간신히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릉 근처에서 풀려난 선생이 고향인 원산으로 돌아가자 그곳은 이미 국군이 점령한 상태, 선생이 거기서 한 달인가를 지낼 때 저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을 만나 퇴각하게 된다. 전쟁사로 보면 바로 1·4 후퇴다. 서울을 버리고 퇴각한 때가 1월 4일이고 원산에서 국군이 철수한 때는 그보다 앞선 12월 초순경이다.

그때 원산에 미군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선생은 아버지와 함께 미군 함정이 정박해 있는 항구를 향해 떠났지만 도중에 아버지는 친구를 잠깐 만나고 가시겠다고 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다. 선생 혼자 부두에 정박한 미군 LST 함정에 홀로 오르니, 역사적으로는 그것이 원산철수, 곧 흥남철수의 서막이었다.

그때 원산에서 떠난 또 한 사람의 미래작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작가 최인훈, 1936년생이다. 함정은 두 사람을 부산에 내려 놓았고, 그로부터 두 원산고등학생의 남한 생활이 펼쳐진다. 특히, 혈혈단신 월남한 이호철 선생은 일가족이 함께 내려온 최인훈 선생보다 더욱 외로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부산에 문자 그대로 `낙지` 한 이호철 선생이 우여곡절 끝에 잡은 직장이 바로 국수 뽑는 제면소, 이것이 나중에 장편소설 “소시민”을 쓰는 밑거름이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이른바 `월남작가``월남문학`을 공부하는 중에 읽었는데, 소설 속 주인공의 원초적인 생기와 소설 전체에 흐르는 유머와 페이소스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또, 선생은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장편소설을 쓰시기도 했는데, 이것은 부산 임시수도로부터의 환도 후 1950년대부터 1960년대의 서울에 관한 가장 풍요로운 풍속지 가운데 하나로 남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저 남쪽 바닷가 태생 길자라는 여인이 월남 청년을 정 깊이 사랑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또한 사랑, 정이 몹시 고팠던 선생 아니고는 쉽게 쓸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얼마 전에 근황을 들은 즉, “월간문학”에 산문을 연재하고 계셨고, 이 글들을 모아 책을 내시겠다고도 하셨다. 그런데, 여름 지나면서 뜻하지 않은 병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으셨고 지금도 상태가 썩 좋지 않으시다는 것이다.

사람의 운은 모르는 일이지만 툭 털고 일어나 그 소탈한 웃음을 다시 보여주시기를 고대한다. 귀한 작가시다.

방민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