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현송 정치환 화백 추모전 <bR>30일까지 대구 J&C 아트스페이스<bR>발묵·파묵 등 다양한 표현기법 구사<bR>“묵법 변주로 수묵 교향악 연주” 찬사
지난해 9월 지병으로 타계한 한국화가 고 현송 정치환(1942~2015)은 1970년대 이후 한국화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한 대구 출신의 한국화단의 거목이다.`해방 후 한국화단의 제2세대로서, 한국화의 정체성 인식과 현대화를 위해 고심해온 대표적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궤적이다. `묵법(墨法)의 변주로 수묵(水墨)의 교향악을 연주한다`는 평을 받으며 1970년대부터 고향인 대구 화단을 묵묵히 지키며 변함없는 예술혼을 발휘했던 정 화백은 한국화의 현대화라는 과제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개성적인 화풍을 창조하며, 전통적 미학을 계승발전 시켜 한국화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끝임 없이 추구해 나갔던 화가였다.
특히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대상을 보고 느껴지는 인상과 분위기를 자유롭게 수묵화로 표현해 대중과 미술계의 관심을 받았던 그는 발묵(潑墨:먹물이 번지어 퍼지게 하는 산수화법)과 파묵(破墨:처음의 먹이 채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농담을 조절하면서 그림을 완성시키는 기법) 등 다양한 표현기법을 구사하며 감각적 조형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일관되게 해왔다.
1964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전통 한국화의 뿌리가 없었던 대구에 정착해 한국화의 전통화법과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화의 현대적 계승을 이어가며 영남 한국화단에 새로운 전통을 심으며 한평생을 한국화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변함없는 예술혼을 발휘했다. 그의 작품은 전통회화 특유의 묵법을 능숙하고 다양하게 구사해 한국화의 정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화백은 1970년대 한국화의 전통적인 화법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동시대 감각과 정신을 수묵 속에 실어내는 모색기의 작품을 거쳐, 80년대 초에 들어 하늘과 땅의 근원에 대한 사색과 명상을 통해 만물 생육의 근거와 그 골격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노력은 90년대에도 지속돼 청산의 맥과 기운을 옮기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녹색 공간`이 주로 등장한다. 정 화백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90년대 후반부터는 묵필의 흔적을 통해 마음으로 느끼는 우주 경계의 울림들을 직관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1975년 대백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0여 회의 개인전과 100여 회의 단체전을 가졌던 정 화백은 계명대 미술학과 조교수, 영남대 조형대학 학장 겸 조형 대학원 원장, 국전 추천작가,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등을 지냈으며, 제28회 국전 문화공보부 장관상, 문화훈장, 제1회 의제 허백련 예술상(창작상), 제24회 대구시 문화상 등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영남대 박물관 등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대구 출신의 한국화단의 거목` 정치환 화백의 타계 1주기 추모전이 오는 30일까지 대구 J&C 아트스페이스(대구 동구 파계로 616)에서 열린다.
부인 최영자(전 대구가톨릭대 공예과 교수)씨와 교단에서 함께했던 제자, 화단 선후배, 지인들이 기획한 이번 추모전은 고인의 예술세계와 발자취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회에는 전통한국화가 아닌 현대 한국화에 심취해 한국화의 본질을 탐구하며 창의적인 회화세계를 보여줬던 정 화백의 유작 20여 점이 선보인다.
미술평론가 강선학씨는 “그의 1970년대 작품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소재들이 주를 이루고, 화면은 추상화라고 할 수밖에 없는 특징으로 이뤄져 있다. 1980년 이후 그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의 언저리에서 산수화의 새로운 구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문인화의 현대적 이해이며 산수화의 현대적 재구성”이라고 평가했다. 강선학씨는 또 “그러나 그는 산수를 하나의 기호로 읽고 이해하고 시각화하려 한다. 산수라는 이념, 산수라는 전통적 개념이 다른 장르와의 변별점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현대화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기도 하다”라고 평가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