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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그대 안녕하시라

등록일 2016-09-02 02:01 게재일 2016-09-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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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골에서 올라 약수골로 내려오며 만난 불상이다. 불상의 오른쪽 뒤편의 연화반석은 당시 이 불상의 위엄을 드러내지만, 뒤틀리고 어긋난 채로 흩어진 반석은 이 불상의 쇠락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기도 한다. 이 불상 앞에 몇 몇의 사람들이 석탑을 쌓아주었다. 그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 탑골에서 올라 약수골로 내려오며 만난 불상이다. 불상의 오른쪽 뒤편의 연화반석은 당시 이 불상의 위엄을 드러내지만, 뒤틀리고 어긋난 채로 흩어진 반석은 이 불상의 쇠락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기도 한다. 이 불상 앞에 몇 몇의 사람들이 석탑을 쌓아주었다. 그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옹박`과 도굴꾼

2003년에 개봉한 `옹박`이라는 영화는, 주인공 역할을 맡은 토니 자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는 리얼 액션은 액션영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고 태국의 무예타이를 전 세계에 보급하는데 기여했다. 영화 한 편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니! 사람들이 왜 영화에 빠져드는지 알 것 같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옹박`은 시골마을을 수호하는 불상이다. 도굴꾼이 옹박의 머리를 훔쳐가고, 그것을 찾기 위해 도시로 떠난 팅(토니 자)의 사투를 이 영화는 그리고 있다. 나는 영화관에선 보지 못하고 집에서 비디오로 보며, 토니 자의 발차기를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비디오테이프라는 것도 있었고, 그걸 빌려주는 대여점도 있었다. 어제 일 같은데, 비디오테이프와 비디오데크는 풍문처럼 떠돌 뿐 그 실체를 보긴 어렵다.

토니 자의 액션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바다 속에 숨겨놓은 수많은 불상과 불상의 머리였다. 어떤 것들은 불상을 통째로 가져왔지만, 어떤 것들은 머리만 잘라다 놓기도 했다.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까지 바다 속은 그야말로 거대한 박물관이었다. 불상들은 대개 순박한 시골 마을 사람들의 것이었고 그들에게 불상은 기복과 기원,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대상이었다.

그런 불상이 마을 사람들의 절실함 따위와 관계없이 몇 푼의 돈으로 환산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에 아팠고, 잘 살기 위해 단지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벌이는 도굴꾼의 악행이 무서웠고, 전 세계로 팔려나간 불상이 돈 많은 이들의 한낱 과시용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안타까웠다. 이러한 일이 결코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태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일 것 같아 찹찹했다.

△약수골 불상과 환지증

머리가 사라지고 몸만 덩그러니 남은 흉측한 불상들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나는 이런 불상을 경주 남산에서 본 적이 있다. 머리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불상은 반석도 없이 맨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불상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혹시 이 불상의 머리도 도굴꾼들이 훔쳐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랜 세월과 함께 땅이 깎이고 파이면서 불상은 균형을 잃고 굴러 떨어졌을 것이고 그 와중에 가장 가늘고 약한 목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머리는 어딘가에 파묻혔거나 아니면 누군가 고이 모시고 계실지도 모른다.

환지증이라는 것이 있다. 이미 잘려나간 신체의 한 부분이 여전히 있는 것처럼 느끼는 병이라고 한다. `내 다리 내놔라`며 따라오는 귀신이야기는 환지증의 비유담일는지도 모르겠다. 환지증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발가락이 가려우면 긁을 수 있지만, 없는 발가락이 가려우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긁을 수 있을까. 나는 저 불상이 환지증 환자처럼 머리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아 측은하다. 그리워하려 해도 머리가 없어 그리워할 수조차 없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아프다. 나는 환지증의 고통을 알지 못하며, 저 머리 없는 불상의 고통 역시 알지 못한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나는 환지증을 앓는 사람도 아니고, 저 불상도 아니어서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다만 어림짐작할 뿐이다.

▲ 공강일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이것은 당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당신이 중요한 이식수술을 받는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하다. 오늘 수술 받게 될 당신의 마음은 나보다 더 복잡할 것이다. 당신과 나의 이 복잡한 심경은 죽음으로부터 연유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같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을 삼킬 죽음을 생각하고, 나는 당신이 죽음 뒤편으로 사라지고 난 이후 내게 남게 될 삶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고 당신 역시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할 수는 있다. 만약 당신이 잘못 된다면, 나는 환지증 환자처럼 당신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당신은 나의 머리와도 같아서 당신이 없으면, 나는 저 불상처럼 그리워도 그리워할 수조차 없이 삶 속에 버려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그대 부디 안녕하시길….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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