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벼르고 벼르던 일을 하러 구둣방에 들렀다. 닳고 닳은 구두 뒤축을 수리하자는 것이다.
한 일 년 구두를 묵혀 두었다. 신기 싫어 신발장에 그냥 넣어둔 것이 아니다. 구두 뒤축이 닳아 구멍이 뻥 하고 뚫려 거기로 돌멩이 하나가 들어가 앉았다. 그 느낌이 성가셔 한 동안 쳐다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제법 선선해져 그런지 다시 구두 생각이 났다. 이런 날에는 이런 신발, 저런 날에는 저런 신발 하고 정해 놓고 신는 규칙성은 내게 없다. 격식을 갖추는 행사장에는 될 수만 있으면 가지 말자는 주의고, 한 번 운동화든 뭐든 신기 시작하면 한 달도 좋고 두 달도 좋다. 또 구두가 단 한 켤레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 구두의 차례가 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서 신다보니 돌멩이는 어디로 빠져 달아나 버렸다. 며칠 그대로 신고 다니기는 다녔지만 그 뻥 뚫린 신발 뒤축 구멍의 느낌이 발밑에 그대로 전해졌다.
아무래도 구둣방을 찾아야겠다. 그런데 뭣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눈에 잘 띄던 구둣방이 학교 갈 때도 없고 광화문에 서점 나갈 때도 없고 사당동에 약속 때문에 나갈 때도 없다.
물론 우리 동네 구둣방이야 가장 먼저 생각이 나기는 났다. 이따금은 거기 가서 구두를 닦고 수선도 했다. 하지만 요즘 아침 일찍 나가 못 들르고 밤에 늦게 들어와 못 들렀다. 그러던 것이 이제 기회가 닿은 것이다.
나갈 때는 구둣방을 향해 나갔는데 걷다 보니 이미 지하철 역 앞까지 다 와 버렸다. 어떻게 할까 하다 물경 백오십 미터나 되는 거리를 되돌아가기로 한다. 구둣방 아저씨가 공원 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서 있다 반색을 하신다.
구두 뒤축을 갈 수 있는지 봐달라고 말씀 드리니 어떤 구두든 못 가는 구두는 없단다. 내가 구둣방 의자에 앉아 슬리퍼로 갈아 신고 구두를 내밀자 아주 좋은 구두란다. 자그마치 송아지 가죽이라는 것이다. 그냥 소가죽하고 송아지 가죽하고 다른 것이냐 여쭸더니, 달라도 많이 다르단다. 소가죽에 비해 송아지 가죽은 부드럽기도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질기다고 한다. 어느 가게에서인가 세일할 때 산 기억은 있지만 송아지 가죽 구두라고 의식한 것 같지는 않다. 별일도 아닌데 기분이 좋아진다.
앉은 김에 지나다니며 궁금하던 것을 여쭤본다. 놀이터 옆에 상가 건물을 헐어내고 한동안 주차장 공터로 썼는데 얼마 전부터 거기를 다시 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호텔을 짓는단다. 그러면서 구둣방 경기도 나빠졌다 좋아졌다 경기를 탄단다. 바로 앞에 강화도 가는 버스 터미널이 있을 때 경기가 좋았단다. 그게 없어지자 구둣방 장사가 아주 좋지 않았단다. 더구나 요즘엔 열이면 여덟, 운동화나 신지 여간해서는 구두를 사 신지 않는단다. 남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자들도 그렇단다. 이제 호텔을 지으면 구둣방 경기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단다.
내가 짐짓 아저씨도 이 동네 빌딩 하나는 갖고 계실 것 같다고 하자, 36년 한 자리에서 구두 수선만 했는데, 집 한 채 겨우 장만했다고 한다. 돈 벌려면 열심히 일하면 안 된다고 했다. 부동산 투기를 하든 다른 뭔가를 해야지 밤낮 구두 수선만 해서는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둣방에 들르는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 좋은 일이 있어서 찾아오는 것이란다. 결혼식에 가든, 잔칫집에 가든, 행사장에 가든, 사람을 만나러 가든, 좋은 일 아니고서 구두 닦고 고치러 오는 사람들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둣방은 늘 기분 좋은 곳이고 자신도 손님들을 더 기쁘게 해 주려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하신단다. 재밌는 얘기도 해주고 구두도 더 씽씽하게 닦아 주신단다. 그러고 보니 이 아저씨 말씀 듣다 보니 재미도 있고 나는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온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아졌다.
구두를 건네 받으며 얼마냐고 여쭈어보니 만원이다. 나는 단돈 만원에 뒤축을 새로 댄 구두를 신고 너무도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