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의 막바지 하루를 즐기러 가서 밤늦게 무서운 얘기들을 한다.
소설도 쓰고 평전도 쓰는 선배, 바로 어제 한밤에 어느 기차역에 내렸다고 한다. 친구가 외국 여행을 떠나면서 집을 한번 봐달라고 했다나.
역에서 그 집까지 꽤 먼데 차는 이미 끊겼다.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국도길을, 마주오는 차들 불빛을 쏘이며 걸어갔다고 한다.
밤에 음주운전에 졸음운전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본 한밤의 뺑소니 사고들을 떠올린다.
위험을 느낀 나머지 도로 아래 농로를 택했다고 한다. 농로라면 나는 또 `살인의 추억`이 생각난다. 시신이 발견된 농수로가 떠오른다. 경기도 화성에서는 1980년대 말고 2000년대 초반에도 연쇄 살인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여성이라면 절대로 `호의동승`에 응하지 말 일이다.
걷다보니 농로가 끊긴 데가 나오고 개울이 나왔다. 다시 도로로 올라와 차들을 향해 태워달라는 신호를 보내봤지만 무정하게 다들 지나쳐갔다.
한밤에, 열두시도 넘었는데, 국도에서 갑자기 손을 흔드는 사내라. 놀라지 않을 운전자가 없으리라.
천신만고 끝에 세 시간이나 걸어서야 겨우 친구의 아파트에 도착했고. 우편함에 쌓여 있는 우편물들을 안고 계단을 올라갔고.
한밤의 계단이라면 나는 또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다. 칼이라도 휘두를 것 같은 위기를 느낀다.
막다른 골목, 어두침침한 계단, 비어 있는 집은 무섭다.
내가 사는 동네에 구두집이 있다. 거기서 몇 십년을 일했다는 아저씨, 바로 저기가 유영철이 살았던 곳이라고, 구두약 묻은 손가락으로 가리킨 적이 있다.
드디어 텅빈 아파트 문을 열어젖히자 안으로부터 훅, 하고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단다. 맙소사.
이렇게 며칠 째 밤낮없는 폭염이라면 어떤 시신도 심하게 부패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다행히, 오랫동안 굳게 닫아놓은 아파트 안은 그냥 뜨거울 뿐이다. 한밤인데도 에어콘의 온도 표시는 37도를 가리켰다. 선배는 창문을 열고 에어콘을 켜고 잤는데, 일어나보니 온도는 26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이에, 이야기를 듣던 여성이 신정동 엽기토끼 이야기를 꺼냈다. 서울 신정동에, 십 년 전쯤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여자들은 한밤도 아닌 대낮에 지하철역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길에 납치되어 어느 곳인가로 끌려갔다. 살아남은 여성의 기억에 의하면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방 같은 곳에 노끈들이 흩어져 있고, 자기를 납치해간 남자 말고 또다른 사람이 있었으며, 그들은 그녀를 죽이겠다고 했다. 여자는 그들이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방을 도망쳐 나와 2층 계단으로 향한 곳에 숨었다. 이미 한밤중이었다. 남자들이 욕설을 하며 대문 바깥으로 나가 그녀를 찾아댔지만 그녀는 용케 발각되지 않았고, 한참 있다 도망쳐 살아났다.
서울의 어떤 동네들은 격자형 골목이 연속되어 있다. 어디가 어딘지, 처음 가는 사람은 분간하기 어렵다. 살아남으려고 죽으라고 달아난 여자는 덕분에 기억을 상실하다시피 했다. 다만 하나. 그녀가 몸을 숨긴 신발장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나도 서울 서교동 경남예식장 뒷골목에 살 때 무서운 일을 당한 적이 있다. 그 길은 가로등이 없고 인적도 드물다. 나는 한밤에 집에 돌아가려고 그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남자 둘이 걸어오고 있었다. 무심결에 그들을 보는 순간, 그들 중 하나가 들고 있던 맥주캔을 내 얼굴을 향해 집어던졌다. 캔은 아직 따지 않은 것이었고 안경을 끼고 있던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저만치 떨어진 편의점에 들어간 그들을 쫓아 들어갔을 때, 그들 중 하나가 내게 말했다.
너 오늘 운 좋은 거야. 저 친구가 어떤 앤지 알아?
그리고 그들은 편의점을 나가 유유히 사라졌다. 뒤늦게 경찰이 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밤이 되면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서울 같은 곳에서는. 여름에는. 그리고 이런 어두운 욕망의 시대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