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이른 휴가인 셈이다. 육지에 퍼붓던 장대비 대신 제주도엔 따가운 햇볕이 과즙처럼 쏟아졌다. 땡볕과 야자수, 더운 바람, 샌들과 선글라스의 행렬…. 마치 지중해에 온 것 같아 설렜다.
도착하자마자 시원한 밀면 한 그릇을 먹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에메랄드빛 함덕 바다를 보고 솟구치는 환희를 견딜 수 없어 옷 입은 채로 뛰어들었다. 투명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맥주를 마셨더니 세상이 다 만만했다. 내가 왕 같았다.
만장굴, 한라산, 성산일출봉, 주상절리, 정방폭포 등 제주의 경이로운 자연경관에 감탄했다. 이름난 시장과 카페, 체험 공간에도 들렀다. 낚시꾼으로서도 최선을 다해 놀았다. 배를 타고 한치를 여러 마리 잡아와 회 뜨고, 튀기고, 데친 것도 모자라 속을 채워 순대로 만들어 먹었다. 갯바위에서 노래미와 용치놀래기를 낚아 회를 떠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여행 첫날,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중국 관광객들이다. 성산일출봉을 인해전술로 점령하고 있는데, 여기가 한국 땅인지 아니면 말 통하는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일출봉 정상에서 나란히 앉은 네댓 명의 중국 남자들이 담배를 꼬나물다 그 꽁초를 아무데나 버렸다. 보다 못해 가서 한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그 미개함이 너무 견고해 도무지 알아먹을 것 같지도 않거니와 주변엔 온통 웃통을 벗거나 내의 차림의, 바로 옆 사람에게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화하는 중국인들뿐이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서둘러 내려왔다.
몰지각한 중국 관광객들 때문에 잡친 기분을 제주개가 풀어줬다. 더위를 피하러 들어간 한 카페 마당에서 만났다. 날렵한 몸과 초롱초롱한 눈이 과연 영물로 보였다. 3천 년 전에 제주도에 정착한 제주개는 온순하면서도 민첩해 예부터 야생동물 사냥에 발군이었다. 멸종된 줄 알았지만 1986년에 세 마리가 발견되었고, 번식에 노력한 결과 현재는 일반에 분양할 정도로 늘어났다. 카페 주인에게 물으니 단골손님을 알아보고 반길 정도로 영특하고, 멧돼지 같은 유해동물을 쫓을 만큼 용맹하단다. 그 늠름한 모습에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날 저녁 식사가 환상적이었다. 현지인이 추천한 집에서 흑돼지구이를 먹었는데, 두툼한 고기를 멜젓(멸치젓)에 찍어 먹는 맛이 기가 막혔다. 먹어도 먹어도 젓가락이 멈춰지질 않아, 이러다 내가 돼지가 되겠구나 싶었다. 제주 흑돼지는 질병 저항력이 강해서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육질과 맛이 우수해 최고의 식재료로 각광받는다. 예전엔 인분을 먹여 키워 `똥돼지`로 불렀다. 인간은 똥을 주는데, 돼지는 살을 내어준다. 배설물을 고기로 바꿔내는 진정한 연금술사다. 입안에 감도는 흑돼지의 향과 포만감을 가득 안고 숙소에 몸을 눕혔다. 평소에 악몽을 자주 꾸는데, 낮에 만난 제주개가 드림캐처(악몽을 쫓아내준다는 수호신 또는 부적)가 되었는지 무더위 속 잠결이 함덕 바다처럼 청량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이라는 사람 때문에 한국이 시끄러웠다. “민중은 개돼지다”라는 막말을 마주하니 늠름한 제주견과 맛있는 흑돼지에게 미안해졌다. 인간을 대표해 사과하고, 개돼지의 유익함을 오래 생각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그래서 거기 기생해 피를 빨고, 알을 까고, 살을 갉아먹는 흡충, 기생충, 구더기 같은 것들보다야 개돼지가 훨씬 낫다. 자기들만 배불리고 살아남으려는 이기적 기생충보다 자기를 희생해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적 개돼지로 살고 싶다. 나향욱 같은 자들이 이룬 사회는 상류사회가 아니라`충(蟲)류사회`다. `충류`에게 묻는다. “너는 국민에게 한번이라도 충직하고 믿음직한 개였느냐. 한번이라도 국민을 먹고 살게 배불리는 돼지였느냐.”
여행 동안 모기가 간혹 윙윙거렸지만 `막말충` 이상으로 거슬리는 충류는 없었다. 해변엔 반려견과 함께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고, 나는 돔베고기(제주식 돼지수육)와 흑돼지 돈가스를 또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