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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선물한 땅`서 알알이 영그는 희망

전병휴·홍성식기자
등록일 2016-05-23 02:01 게재일 2016-05-2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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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대가야의 숨소리를 듣다<bR> ⑸ 두 번도 필요 없다, 한 번이면 반하는 개진감자
▲ 트랙터를 이용해 감자를 수확하는 고령군 농민들.
▲ 트랙터를 이용해 감자를 수확하는 고령군 농민들.

짙푸른 녹음 위에 점점이 떨어진 눈송이 같았다. 어린 시절 재잘거리며 흥얼대던 추억 속 노래가 함께 떠올랐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

취재를 위해 고령군 개진면 감자밭을 찾았던 날. 땅 위로 드러난 새하얀 감자꽃과 땅 속에 숨어 알알이 영근 감자가 동시에 고개 들어 기자를 반겼다. 검댕을 입에 묻힌 채 호호 불며 까먹던 바로 그 감자,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만든 도시락반찬으로 거의 매일 만나던 바로 그 감자였다. 때로 기억은 냄새를 동반한 맛의 형상으로 다가온다.

동고령농협 “서울 경매사 초청 등으로 전국화 노력”

군도 무인항공방제 지원 등 품질향상 적극 도와

봄·초여름 수확하는 `답전윤환방식`이 우수품질 비법

고령군 개진면 옥산리에서 25년째 감자농사를 짓고 있는 김종규(47)씨. 무작정 대처(大處)로 떠나고만 싶었던 20대를 지나 혈기방장한 30대를 거쳤고, 이제 세상사 미혹에서 자유로워진다는 불혹(不惑)을 넘긴지도 오래. 자타공인 `감자달인` 김씨가 운전하는 트랙터가 지나는 곳마다 알 굵은 감자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무슨 마술 같았다.

“여기서 나오는 감자는 무엇보다 맛있습니다. 대구건 서울이건 따질 것도 없어요. 한 번 개진감자를 맛본 사람들은 반드시 두 번, 세 번 다시 찾게 됩니다. 요즘엔 밀려드는 택배주문 탓에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비닐하우스 4동과 1만6천530여㎡의 노지에서 감자를 키우고 있는 김씨는 “감자 재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우리 지역”이라는 자랑을 하면서도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름 아닌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주문이 늘어가면서 감당해야 하는 택배비용.

▲ 김영순 씨가 수확한 감자를 손에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영순 씨가 수확한 감자를 손에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인근 지방자치단체에선 우체국 등과 계약을 맺어 농산물 택배비를 지원해준다고 들었다. 고령군도 지역 농산물의 판매 활성화를 이룰 수 있도록 택배비를 일부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김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이는 직거래를 통한 생산자와 소비자간 신뢰구축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날 수확되는 감자의 작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동고령농협 개진지점 권순목 지점장은 “이미 수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개진감자의 품질과 맛은 확인이 됐다. 서울 가락동 공영도매시장의 경매사를 초청해 고령에서 생산되는 감자를 보여줌으로써 경매에서 높은 가격이 나오도록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로 향후 `개진감자의 전국화`와 판로 개척에 소홀함이 없을 것임을 약속했다.

지금까지도 고령군은 비용의 100%를 지원해 연 3회 무인항공방제를 실시하는 등 개진감자의 품질 향상과 홍보에 적지 않은 힘을 쏟아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역의 특산물이 제대로 자리 잡고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민·관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수 중에 필수다.

대구시 달서구에서 감자 수확을 돕기 위해 김종규 씨의 감자밭을 찾은 김영순(62)씨는 “여기서 일한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나이 되도록 먹어본 감자 중에선 이곳 개진면 감자만한 게 없더라”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이 캔 커다랗고 실한 감자를 보여주었다. 그런 김씨의 웃음이 더없이 환했다.

고령에서 생산되는 감자가 좋은 품질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낙동강변을 따라 형성된 양질의 토양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봄과 초여름에 감자를 수확하는 `답전윤환방식`을 통해 밭을 논으로 전환하는 것도 개진감자가 우수한 품질을 담보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 고령군 개진면 일대가 피어난 감자꽃으로 환하다.
▲ 고령군 개진면 일대가 피어난 감자꽃으로 환하다.
1820년대 재배 시작… 지역선 1900년대 초반부터

농기센터, 바이러스 없는 씨감자 제공 생산량 제고

농민·군청·농협·농기센터 협업으로 명품감자 생산

농업전문가들은 이를 “담수효과로 연작장해(동일 작물을 같은 밭에 연속적으로 재배할 때 작물의 품질과 수확량이 떨어지는 현상)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감자가 우리 땅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몇 가지 학설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1820년대 중반 청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인삼을 몰래 캐러 왔다가 가지고 온 감자를 남기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고령에서는 1900년대 초반부터 개진면 일대에서 감자를 길러 먹기 시작했다. 이후 “농업생산력이 높아진 1970년대에 들어서면부터 낙동강 연안을 중심으로 농경지가 대형화됐다”는 게 동고령농협의 부연이다.

조선시대부터 전해져오는 각종 농사관련 서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큰 하천이나 강의 중·하류 지역은 유기질이 풍부하고, 토양입자가 미세하여 감자와 양파, 마늘과 수박의 재배에 적합하다. 반면, 강의 상류 지역은 토양입자가 굵어 무와 당근, 파 등이 잘 자란다. 이것에 근거해도 고령 개진면은 감자농사를 위해 `하늘이 선물한 땅`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 감자밭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종규(왼쪽)씨와 권순목 지점장.
▲ 감자밭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종규(왼쪽)씨와 권순목 지점장.

동고령농협은 그간 생산단계에서부터 유통단계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해 개진감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감자농사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고령군농산물산지유통센터 설립과 집하장, 저온저장고, 자동선별기계 등의 도입을 통한 인프라 구축 등이 그 생생한 사례다.

기자가 고령군농업기술센터를 찾았던 날. 서창교 작물환경계장은 품질 좋은 씨감자 배양을 위한 연구에 골몰하고 있었다. 2012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기술센터 조직배양실은 개진감자의 미래를 좌우할 주요한 공간 중 하나다.

서 계장은 “재배농가들이 직접 원종생산을 함으로써 좋은 씨감자를 자체적으로 길러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바이러스 없는 씨감자로 재배를 하면 생산량을 최대 20% 이상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령군에선 오늘도 농민과 군청, 농협과 농업기술센터가 즐거운 마음으로 협력하며 개진감자의 내일을 설계하고 있다. 고령의 5월, 활짝 피어난 하얀 감자꽃 같은 탐스런 미래가 익어가고 있다.

▲ 비닐하우스에서 멜론 수확에여념이 없는 고령의 농민.<br /><br />
▲ 비닐하우스에서 멜론 수확에여념이 없는 고령의 농민.
멜론, 독특한 향기와 맛으로 시원한 여름을…

성인병 예방은 물론 항산화작용으로 미용에도 그만

압도적인 맛·당도, 농협중앙회 평가서도 인정받아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 비단 문학에 큰 관심을 가진 이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작가의 이름일 것이다.

`오감도` `날개` `봉별기` 등 오래 기억될 한국문학사의 걸작을 남긴 그는 폐병을 앓던 스물일곱 살의 어느 날 밤,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멜론 향기가 맡고 싶네.”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의 도쿄. 식민지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이국(異國)에서 그리워한 것은 멜론으로 상징된 이상향의 향수가 아니었을까.

지금 고령은 1930년대 이 땅 최고의 시인을 매료시켰던 바로 그 멜론의 향기로 가득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고령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무네트멜론(과일의 표피에 그물 무늬가 없는 멜론)`의 생산지였다. 2001년부터 시작된 고령 멜론의 일본 수출은 해외에 한국 농산물의 우수성을 알린 좋은 사례로도 기록됐다. 80여 년 전 이상이 머물렀던 도쿄. 현재 그곳에 사는 한국동포들은 이제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한국 멜론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멜론의 원산지는 북아프리카 혹은, 인도나 중동으로 추정된다. 쌍떡잎을 가진 속씨식물로 둥근 모양의 과일이며, 과육은 품종에 따라 흰색이나 연한 녹색을 띤다. 재배 지역에 달리해 앞서 언급한 무네트멜론과 함께 네트멜론(표피가 그물과 같이 갈라져 있는 멜론) 등이 생산된다.

고령의 무네트멜론은 맛과 당도에서 타 지역 멜론을 압도한다. 동고령농협이 주도해온 선진적인 재배·출하시스템 또한 2012년 농협중앙회가 주관한 `한국 멜론 평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그 효율성을 인정받았다.

비타민A와 C는 물론 베타카로틴이 다량 함유된 멜론은 항산화작용과 함께 피부 미용에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전문가들은 멜론이 “심장병과 뇌졸중 등 성인병 예방에도 좋은 과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수분이 많아 쉽게 포만감을 느끼는 까닭에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여성들에게도 인기”라는 게 고령 멜론 생산농가들의 설명이다.

고령에서는 파파야, 양구, 홈런 등의 이름을 가진 다양한 품종의 멜론이 재배된다. 재배 면적은 약 100ha. 모두 133 가구가 멜론농사를 짓고 있으며, 한 해 생산량은 2천600t 정도로 추산된다. 고령 멜론의 출하 시기는 4월부터 6월. 멜론의 향긋한 향기와 달콤한 맛에 빠져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이 고령 방문의 적기(適期)다.

/전병휴·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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