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항해 윌리엄 M. 레디 문학과지성사 펴냄. 인문
최근“감정 연구에서 혁명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감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동안 감정은 이성 및 의지와 대립되는 육체적이고 주관적인 것, 공적·학문적 영역에서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얼마 전 한국에서도 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이 번역됐고, 여러 학문 분야에서 감정에 대한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감정사회학, 감정사 등 분과학문 이름 앞에 `감정`이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역사학 분야에서 감정과 역사의 관계를 다루는 주목할 만한 저작이 출간됐다. 미국 듀크 대학의 역사학 및 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인 윌리엄M. 레디는 `감정의 항해`(문학과지성사)에서 감정이`생각`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류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진행돼 온 최근의 감정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뒤, 감정사를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 틀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에 입각해 `감상주의`가 수백 배, 수천 배 증폭됐던 프랑스혁명 시기를 풍부한 역사적 사료를 활용해 흥미롭게 분석한다.
윌리엄 레디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심리학·인류학자·역사 및 문예비평가들의 감정 연구가들의 감정에 대한 연구를 면밀하게 검토한 뒤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론 틀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재미있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제1부 `감정이란 무엇인가`는 인지 심리학·인류학의 감정에 대한 접근, 감정의 자유 등을 아우르며 인간 감정의 본질을 파고든다. 감정은 상황에 대한 인지이며 의식에 입장하지 못한 활성화된 생각 재료이기 때문에 감정이 공동체 및 그 구성원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질문한다. 감정은 개개인의 내밀한 속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사회적이라는 것. 나아가 감정에 역사가 구축되기 때문에 감정의 역사화에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감정체제에 대해 도덕적,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2부 `역사 속의 감정: 1700~1850년의 프랑스`는 제1부에서 확립한 감정론을 자신의 주 전공인 프랑스 근대사에 적용시킨다. 그는 각종 연구자료, 문학작품, 편지, 재판기록 등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료를 동원해 감정이 근대로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중요한 사건인 프랑스혁명의 전개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주장한다.
18세기 많은 프랑스인들이 감상주의가 그들을 전례 없는 새로운 종류의 감정의 자유로 안내해줄 것이라 믿었던 것과 달리, 당시의 감정체제는 감정에 경직된 규율을 요구했고, 그렇게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했다. 레디는 19세기 초에 와서야 비로소 감정에 자유가 부여됐고, 그로써 `감정의 항해`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해 감정의 의미 변화에 대한 해명에 대한 미결정성과 모순에 맞닥뜨린 자아가 선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조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감정의 항해`를 용이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의 항해 가능성 여부야말로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던져야 할 보편적 질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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