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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철강공단의 슬픈 자화상

등록일 2016-02-24 02:01 게재일 2016-02-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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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득<br /><br />편집부국장
▲ 김명득 편집부국장

“아, 성과급 400~500% 받던 그 시절이 무척 그립네요. 이제 다시는 그런 시절이 오지 않겠지요….”

지난주 포항철강공단에서 만난 모 업체 L이사가 불쑥 던진 말이다. 요즘 포항철강공단이 예전 같지 않다. 1~4단지 내 공장 곳곳이 문을 닫았거나 아예 가동을 멈춘 곳이 수두룩하다.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철강불황 여파 때문이다.

포항철강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276개(344개 공장)입주 업체 가운데 휴폐업 한 곳이 17개사에 달하고 이들 업체 대부분이 현재 경매절차를 밟고 있거나 아예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포항철강공단의 모습도 활기를 잃었다. 철강제품을 가득 싣고 달리는 화물차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인데, 우렁차게 들리던 공장의 기계소리는 가동을 멈추었는지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중견기업 이상은 버틸 여력이 있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겠지만 자생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은 대부분이 생사(生死) 기로에 놓여 있다.

“철강경기를 살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앞으로 휴폐업 업체는 더욱 늘어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 철강관리공단 관계자의 말이 섬뜩하게 들린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

포항철강공단의 전성기는 지난 1990년을 기점으로 전 후 4~5년쯤으로 기억된다. 필자가 출입하던 그 당시엔 그야말로 철강제품이 없어 못 팔던 시절이었다. 철강시황이 워낙 좋다보니 스크랩(고철)업체들도 덩달아 많은 돈을 벌어 대표가 포항시에 장학금을 수억원씩 기부하기도 했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에도 포항철강공단은 오히려 팽팽 돌아갔다. 그 당시 다른 도시들은 다 죽는다고 아우성쳤지만 포항만큼은 호황을 누렸다. 포항시내의 밤거리는 불야성을 이뤘고 유흥가마다 흥청거렸다.

철강시황이 좋다보니 근로자들이 설이나 추석명절에 받아가는 보너스도 두둑했다. 기본상여금에 특별상여금, 성과급 등 지급할 수 있는 명분은 다 붙여 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기본 봉급 이외에 받는 돈으로 개인 비자금(?)까지 몰래 만드는 직장인들도 많았다. 지금 정년을 앞두고 있는 50대 중·후반의 고참 직원들은 그런 호시절의 향수를 한번쯤 그리워할 것이다.

그 당시엔 공단 업체를 방문해도 큰 부담 없이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식사 한 번 하자는 말도, 저녁에 술 한 잔하자는 말도 흔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업체를 방문하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전화 한 번 하는 것조차도 부담스럽다. 매일 비상회의와 긴급 회의에 참석하느라 파김치가 된 임원이나 간부들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철강공단 업체들이 내보낸 근로자 수가 776명에 달한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직원들을 내보낼지 알 수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교대근무자보다 사무직원들이 더 불안해 하고 있다. 더욱이 `임원(임시직원이라고 빗대어 하는 말)`들은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다. “사주가 언제 집에 가라고 할지 몰라요. 임원이나 간부들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고, 이제까지 다닐 수 있는 것도 다행이지요…” 모 업체 L이사가 한 말이 무척 맘에 걸린다. 그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전화하기조차 겁이 난다. 혹여 전화하더라도 “L 이사님 그만 두셨습니다”라는 말만큼은 제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활기 잃은 포항철강공단에는 온갖 슬픈 자화상이 매일매일 그려지고 있다. 요즘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들리는 곳이 바로 포항철강공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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