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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욕망의 굴레 속 삶의 진정성은…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02-12 02:01 게재일 2016-02-1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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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승철 시집    도서출판b 펴냄, 180쪽

올해로 시력(詩歷) 33년을 맞이한 이승철 시인(59·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이 세번 째 시집 `당산철교 위에서`이후 10년 만에 네 번째 시집 `그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도서출판b)를 펴냈다.

모두 4부로 구성돼 47편의 시가 수록된 이 시집은 지난 10년 동안 시인이 겪은 삶의 흔적들을 오롯이 보여준다.

이번 시집은 뜨거운 열정과 비장한 목적의식이 있던 시대를 경험한 `그 남자는 무엇으로 살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한 일종의 비망록이자, 자본의 굴레 속에 놓인 한 존재가 토해낸 뼈아픈 고해성사이기도 하다.

이승철 시인은 세번째 시집`당산철교 위에서`를 통해 “현실에 굳건히 발 딛고 선 에토스적 시정신과 성적 파토스의 눈부신 충돌 사이에서 자기 생의 의지를 관철하려는`당랑거철의 시학정신`을 보여준”(문학평론가 김춘식, 동국대 교수) 바 있다.

이승철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본의 굴레와 세속적인 욕망 사이에 놓인 존재의 그늘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혹`의 시절을 지나 `지천명`을 헤쳐 온 시인은 이 땅에 펼쳐진 억압적 정치현실과 사회문화적 현상을 조망하면서 이를 헤쳐 나온 시인 스스로에게 삶의 진실과 그 진정성을 되묻는다.

아울러 이 시집은 지난 시절 한국문단의 이면사를 보여준다. 고인이 된 서정주, 김현, 조태일, 채광석, 김남주, 박영근, 박찬, 이기형, 문병란 시인 등의 행적과 고은, 김지하, 황석영, 홍일선, 유재영, 김사인, 이상국, 김영현, 김형수, 정도상, 이재무, 임동확, 박철, 현준만, 정용국 등 현존하는 당대 문인 100여 명이 실명으로 등장해 지난 시절 한국문단의 에피소드를 육성으로 들려주고 있다.

이승철 시인은 억압적 정치현실 속에 담긴 시대적 진실을 증언하면서도 핏대를 세우기보다는, 허허실실 풍자로 세태를 조망하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장삼이사(보통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자본(돈)의 위력이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존재하고 있는 이즈음, 쇠락해 가는 스스로의 삶을 부추겨 힘차게 살아가겠다는 결의는 과연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척박한 시대고와 맞서서 의연히 맞짱을 뜨는 시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이승철 시인은 지난 10년 동안의 내밀한 경험과 상처를 자신의 시 속에 온전히 풀어내고 있다.

시집의 1부는 `존재의 그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못다 한 사랑과 이별, 별거와 이혼의 상처, 어머니의 죽음과 새로운 사랑의 실체를 직면한 시인은 그가 맞닥뜨린 세상사와 사물의 풍경을 통해 생존의 의미를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아무렇지 않게, 이 따위로 녹슨 채로 / 존재의 아픈 그늘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존재의 그늘`)라는 시구를 보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애환인데, 시인은 쇠락해가는 삶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힘차게 살아가겠다는 결의를 보여준다.

2부는 이승의 삶과 죽음에 대한 `오디세이아`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문단의 각종 이면사와 에피소드 그리고 존재의 허무의식을 파토스적 욕망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를 또한 보여준다.

특히 타인의 죽음을 추념할 때 시인은 망자가 살았던 시대와 현재를 비교하고, 생로병사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등 내밀한 목소리는 도드라진다.

3부는 팍팍한 삶의 전장 속에서도 묵묵히 진보적 정치관을 수성하고, 사회비판적 목소리를 담아낸 시편들이다. 지난 2002년의 대선과정과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명칭변경 논쟁,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미국산 쇠고기 파동, 촛불집회와 4대강 사업, 금강산 관광 중단 등에 대해 시인은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지만, `위정자들`에게 적의를 날것으로 노정하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세대가 겪은 이야기로 환원시켜 정치민주화에 대한 신념을 보여준다. 시인은 누군가를 비판할 때조차 핏대를 세우며 욕을 해대기보다는 허허실실 풍자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4부는 시인과 인연을 맺다가 지상을 떠나간 영혼들을 위무하는 진혼가다.

김남주, 이기형, 박영근, 채광석, 조태일, 문병란 시인과 법정스님, 서울예대 무용과 김기인 교수, 문학평론가 김현, 민중화가 여운, 그리고 `세월호`에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레퀴엠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시인은 그 끝에 `어느 날 무등을 보다가 ―그해 5월의 이승철에게`라는, 자기 자신에 관한 시편을 배치해놓았다. `그해`는 1980년일 것이다. 시인은 이때 자신이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때 대의를 위해 죽지 못한 사람이 지금의 비루한 현실에서 “산다는 것은 어쩜 그대 큰 침묵으로 / 한 생애가 말갛게 사라질 때까지 / 참으로 허허롭게 소멸될 수 없음”을 “조금은 쓸쓸하게 깨우치”는 과정에 불과하지 않겠느냐고, 비장하게 되묻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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