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봉산문화회관 `기억의 공작소`<BR>3월 13일까지 박철호 `순환-깃`展
대구 봉산문화회관의 대표적 기획시리즈전인 기억공작소의 올해 첫 초대작가인 박철호 작가의 `순환 - 깃`전
`순환 - 깃`전은 오는 3월 13일까지 봉산문화회관 2층 4전시실에서 열린다.
박철호 작가는 잊히거나 사라져가는 사건 혹은 사물의 기억처럼 선명하지 않고 흐려진 이미지들을 겹치고 쌓고 이어붙이는 신체 행위를 통해 깊이 잠들어있는 감성들의 가녘을 잡아 흔들어 깨우듯이 미술의 다른 가능성을 찾는다. 또한 작가는 갈기로 찢겨 끊어질 듯 이어진 물결 같은 선 드로잉 속에서 관람자가 말이나 새, 나무, 얼굴, 총, 폭탄, 군함 등의 이미지들을 찾아낼 수 있도록 설계한다. 작가의 행위는 선으로 무엇인가를 그려 넣고 감광하고 찍는 판화기법과 덧칠하고 지우고 긋는 회화기법, 각각의 드로잉 단위체를 겹치고 배치하는 조형 설치 방식 등의 결합을 통해 마치 기억의 편린을 어루만지고 공작(工作)하고 있다. 세상 곳곳에 정처 없이 흩어져 있는 물질과 비물질적 구성요소들을 불러 모으는 주술사의 주문이나 수많은 사건 사고 소식을 전달하는 전파매체의 파장과 그 켜의 결을 연상시키는 작가의 이번 작업은 세계와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시작으로 인간을 향해 소리치는 세계의 근원적 순환 논리를 기억하게 해준다.
박 작가의 회화는 `본연` 그대로의 `살아있음`을 드러내려는 리얼리티이고, 일상 세계를 바라보는 현장의 사회성과 결합하는 회화의 신체적 `행위`에 의해 기억, 현실, 상상적 스펙트럼 속에서 자신만의 회화로 남게 된다. 또한 또 다른 `가능성`으로부터 다시 기억하게 하는 `깃`으로서 우리 자신의 태도와 행위들을 환기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작품 `Despair & Hope`는 뉴욕에서의 기억과 연결된 새의 형상을 통해 인간생명의 위기를 경고하는 작가 의식을 비롯해 동시대 회화의 실험적 해석과 경계를 넘는 재료의 실험 등 자기제안과 수렴의 진정성이 담긴 작가의 대표작 시리즈다. `생성과 소멸의 기록`, `대자연의 신성한 섭리에 대한 교감`으로 읽혀지는 박철호의 작업은 그동안 `찰나와 영원, 절망과 희망 등 반복하는 생명체 존재의 순환`을 다루거나 `자연의 순환에서 자아의 실존을 인식하고 삶의 희노애락을 치유하는 과정`으로도 논의돼 왔다. 특히 그에게 새`깃`은 자연에 내포된 `자유`와 작가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해석된다.
이번 전시는 가능성으로서 `깃`에 관한 시간과 공간의 기억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먼저, 흰빛의 `깃`을 닮은 붓질이 5.2m 높이의 전시장 두 벽면에 가득하고, 반대편 벽면에는 붉은 빛의 `깃`을 연상하는 얼룩이 가득하다. 작가의 `깃`은 자연의 바람결 혹은 파장과 같은 `빛의 흐름`으로 공간 전체에 스며들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듯 겹겹이 포개지면서 도드라진 사각형 아마포(亞麻布)의 섬유질 표면은 물론이고 그 위를 자유분방하게 그은 드로잉 선과 획에서 자연 상태의 본연과 긴장, 기억의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