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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야기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6-01-08 02:01 게재일 2016-01-0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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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의 가출` 손홍규 창비 펴냄, 284쪽
인간 존재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유쾌하면서도 탄탄한 서사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온 작가 손홍규의 네번 째 소설집`그 남자의 가출`(창비)이 출간됐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아홉편의 작품들은 `사람`이라는 공동의 목적지를 향해간다는 점에서 여럿인 채로 하나다. 이번 손홍규의 소설집만큼 `사람`에 천착하는 소설은 흔치 않아 보인다. 작가는 `사람`에 배수진을 치고 깊은 응시와 모색을 통해 주제가 주는 진부함과 일상성을 넘어선다. 아울러 사람다운 삶의 기율에 대해 묻고 그것을 방해하는 현실의 부정함을 드러낸다. 결국 작가는 날로 가팔라지고 있는 세계의 경사진 현실을 형형한 눈으로 바라보며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소설과 소설을 둘러싼 현실에 따듯한 온기를 돌게 한다.

`그 남자의 가출`에 수록된 작품들은 주로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숨어 있는 비일상적인 것들이 한순간 드러나면서 생기는 생경함과 비의를 통해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일별하자면 `파킨슨 병`이나 `가출`, `가족의 죽음`처럼 현실적 삶에 기반한 사건, 혹은 `웜홀`이나 `혼인 신고서를 작성한 여자들에게만 발생하는 질병`, `도시의 기억상실증` 같은 소설적 상상 등이 그것이다.

`정읍에서 울다`와 `그 남자의 가출기`는 노년에 접어든 평범한 사내와 아내의 이야기다. 사내들은 젊은 날의 꿈과 사뭇 비장하게 헤어졌음에도 결국 남루하게 늙은 보통의 가장이며 또한 그 남루를 아내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는 보통의 남편이기도 하다. 남편들은 미운 아내들 때문에 각각 `정읍댁 찾기`에 나서거나 `가출`을 감행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력을 되감아 과거의 사람들과 해후하고 지난날을 조감하며 제 삶의 본질과 의미를 찾아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거꾸로 넘겨본 삶의 페이지엔 성공보다 실패의 흔적이 많고 놓쳐버린 것의 목록이 손에 넣은 것의 목록을 훨씬 웃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주인공들을 앙상하게 하고 비루하게 만들며 인간관계를 지치게 한 시스템의 음험함과 세계의 부조리를 드러낸다.

`발라드`연작(`아내의 발라드``아내를 위한 발라드``발라드의 기원`)은 평범한 일상에 급작스레 닥친 질병에 관한 이야기다. 혼인신고를 한 아내만 감염시켜 비(非)인간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이 연작이 참담하게 다가오는 것은 낯선 질병에 걸린 여인이 신음하며 괴물같이 변하는 과정이 섬뜩하다거나 병의 알레고리가 아내, 남편, 혼인이라는 이름의 배후에 놓인 불행들을 상기시켜서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형언 불가능한 이 현상을 `언젠가 도래했을 미래`라 명명하는 남편들의 태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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