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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세라피, 순수 섬유질 향기 담아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5-10-23 02:01 게재일 2015-10-2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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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도둑` 임수진 해드림 펴냄, 271쪽

수필가 임수진<사진>이 두 번째 수필집 `향기도둑(해드림)`을 출간했다. 2010년 첫 수필집 `나는 당신이 고프다`를 발표한 후 5년 만이다. 첫 수필집 발간 때만 해도 의욕만큼 글이 깊지 못해 그녀는 글이 고팠던 모양이다.

글을 의인화해서 제목을 `당신이 고프다`로 한 것에서 그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홀로 앓으며 견뎌온 시간이 깊어서인지 `향기도둑`은 한결 완숙해진 모습이다.

끊임없이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며 계산된 문학적 장치를 통해 새로운 기법으로 작품을 빚어냈다. 사람은 누구나 가끔은 낯선 곳에 불시착해 있는 듯한 불안감을 느껴 우울해질 때가 있다. 이런 일상에서 임수진은 붓끝을 창밖으로 내보낸다. 거기에서 햇빛이 만져지고, 바람이 만져진다는 것을 안다.

지난날 기억 속 삽화를 잔잔하게 끼워 둔 듯한`향기도둑`에서 `향기`는 `그녀의 순수하고 자연적인 섬유질`이다. 대부분 여류수필가들의 내성이 `섬세`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임수진의 수필을 `아로마세라피`에 비유할 수 있다.

임수진의 글은 그림이 선명하다. 한 편 한 편이 수필이 아닌 짧은 소설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첫 수필집 발간 후 소설을 썼다. 현진건문학상과 경북문학대전에서 단편소설 대상을 받았다. 그래선지`향기도둑`에는 향기로운 지난 시간들이 고스란하다. 여러 편의 단편을 읽은 느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사람 대부분은 뒤편에 슬픔이 많다고 합니다. 어쩌면 제 부모도 뒤에 슬픔을 감추신 분이었을 겁니다. 오늘 밤 꿈속에서라도 두 분을 만나게 되면 가만히 뒤로 돌아가 등을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뒤편`)

“사랑에 빠지면 햇빛이 들어올 공간조차 아까울지 모른다. 종일 마음이 붙잡혀 있다. 지하철에서도 컴퓨터에서도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이유가 없다. 그냥 좋다. 그냥 보고 싶다. 막을 수 없다. 막히지도 않는다.”(`사랑이 무엇이냐고`)

“언니친구가 동그랗게 튀어나온 부분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커멓게 생긴 상자에서 갑자기 남자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놀란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언니도 움찔 놀란 것 같았지만 일어나 앉지는 않았다. 목소리와 함께 쿵쾅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무서웠다. 얼굴은 붉어졌고 심장은 미친 듯 뛰었다. 금방이라도 목소리가 상자를 뚫고 나올 듯했다. 나는 엉덩이를 비비적대며 뒤로 물러났다. 목소리에 잡히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헐레벌떡 튀어 온 나는 문고리를 꼭 붙들었다. 목소리가 쫓아오지 않았는지 두리번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두고 온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가 무사할지 걱정이 되었다.” (`추억은 추억할수록 새로워지고`)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문명을 수혈하는 과정을 임수진은 `추억은 추억할수록 새로워지고`에서 재밌게 풀어냈다.

저자에게 고향은 오래된 우물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다고 썼다. 지은이의 마음속에는 어린아이와 순수함을 간직한 소녀가 살고 있다.

어린 감성은 아직 정제되지 않았기에 너무나 섬세하다. 언뜻 일상의 평범함을 얘기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특별한 묘사가 숨어있다. 일상도 충분히 아름답고 향기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필집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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