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임승유 문학과 지성사 펴냄, 140쪽
“고통을 고통스럽지 않게, 슬픔을 슬프지 않게 그려내는 여유”와 “날카롭게 번뜩이는 이지(理智)가 과하지 않게” 녹아 있다는 평을 받으며 등단한 임승유의 시 51편이 담겨 있다.
시집의 독특한 제목은 “다음엔 내가 너의 아이로 태어날게”라는 책 첫 페이지 시인의 말로, 그리고 “매번 처음 겪는 것처럼 두리번거림은 반복”된다는 책 뒤표지의 산문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건과 고통도 모두 순환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라져버리지 않기 위해 웅얼거리는 모든 존재들을 한꺼번에 이해했”고, “그 웅얼거림을 받아 적기 시작했을 때 시적인 것들이 만들어졌다”는 그의 다짐처럼 이번 시집은 명확한 소리가 없는 사건들에 시적 목소리를 부여하는 시들로 채워졌다.
시인은 문답 형식의 시, 서사가 담긴 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과 이성복의 시 등이 곳곳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구성으로 삶의 문제와 고통을 이야기한다
“친척 집에 다녀와라”(`모자의 효과`)라는 시구로 시집의 문이 열린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여자아이에게 친척 집에 가보라 말하고, 여자아이는 조심스레 문 밖으로, 그리고 임승유의 시 속으로 빨려든다.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화자의 첫 발걸음은 임승유 시 전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약국 가자고 말하는 이를 따라 소풍가듯 따라나서는 이(`우리 약국 갈까`), 잠 속으로 들어간 소년(`밖에다 화초를 내놓고 기르는 여자들은 안에선 무얼 기르는 걸까`), 그곳으로 가자고 말하는 너(`하고 난 뒤의 산책`) 등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이 곧 시가 낯선 세계로 빠져드는 순간과 곧잘 일치하기 때문이다.
시집의 화자가 발을 들여놓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문학평론가 박상수는 임승유 시집을 읽으면 “각설탕”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생각만으로도 혀가 녹는” 각설탕, “금세 기분이 달콤해진다는” 각설탕. 즉, 임승유 시집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의 핵심은`각설탕 같은 달콤함`인 셈이다. 이 세계는 `사탕, 케이크, 망고, 만다린주스, 포도, 앵두` 등 끈적하면서도 새콤달콤한 시어들로 다양하게 변모하며 등장한다.
끊임없이 빠져들 것만 같던 감정들은 임승유 특유의 감각으로 제어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