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의 계절이 왔다. 벌써 일본은 금년에도 두개의 노벨상을 탔다고 떠들썩하다.
노벨상은 널리 알려지듯 다이나마이트 발명자인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의학 화학 물리 문학 평화 5개분야에 시상되다가 68년 경제학상이 추가돼 오늘날 6개 분야에서 수상되고 있다. 노벨상은 300개가 넘는 수상을 한 미국을 선두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일본, 중국, 심지어 인도, 파키스탄 등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나라는 40개국을 넘고 있다. 한국은 평화상을 하나 받아서 체면을 세우곤 있지만 과학상은 전무하기 때문에 OECD국가로서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 중진국들은 거의 다 포함돼 있고 한국만 유일하게 빠져있는 상태이다.
한국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필자가 겪은 조그만 경험이 생각난다.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미국의 수재들과 한국의 수재들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일화가 있다. 이미 알려진 해법을 통해 답을 구하는데 급급한 한국의 수재들은 해법이 없는 문제를 접하였을 때 며칠간 끙끙대다가 끝내 답을 구하지 못했다. 문제를 풀지 못한 한국의 수재들은 미국의 수재들에게 해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는데,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해법이 없으면 해법을 만들어서 답을 구하면 된다” 실제로 그들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해법을 스스로 만드는 창의성을 발휘했으며, 그들이 새로이 제시한 해법은 몇 달 후 논문으로 출판됐다. 한국에서 수재라고 불리던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러한 창의성의 차이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창의력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인가 혹은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한다면 두 가지 모두가 창의력에 공헌을 할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둘 중 비교를 한다면 창의력은 90%정도는 훈련과 환경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창의적인 환경에서의 교육이 이뤄졌다면 국내에서도 여러 명이 노벨상을 탈 수 있었을 것으로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포스텍 내에는 좌대가 있다. 여기에는 뉴턴, 아인슈타인 등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동상이 있고, 한 개의 좌대가 비워져 있는데, 이 곳에 앞으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포스텍 졸업생의 동상을 앉히겠다는 것이다. 포스텍을 설립한지 이제 내년이면 30년이다. 하지만 몇 년 후에 노벨상이 나올 지는 아직도 모른다.
과연 초·중·고등학교에서 창의적으로 길러지지 않은 학생들을, 대학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 노벨상을 받게 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 필자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창의력은 생각이 매우 자유로웠던 초·중·고등학교 때 길러져야 한다.
이미 창의력을 상실한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최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대학평가 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30대 초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50대의 미국의 학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학자가 강조하기를 모든 창의적인 연구는 20대나 30대에서 나온다고 했다.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20~30대 때 이뤄진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기 때문에 연구비를 40~50대에 취해서는 안된다`라는 강한 논조를 펼치고 있었다. `연구비 지원을 되도록 20~30대의 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라는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필자는 과연 한국에서 20~30대의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집중 지원한다고 해서 노벨상이 나오겠는가. 그것조차도 쉬운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초·중·고등학교부터 창의력을 배양시킬 수 있는 교육이 제공된다면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