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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포항역사(驛舍)는 문화재다

등록일 2015-09-21 02:01 게재일 2015-09-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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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미국 철도기업이 건설한 노량진~제물포 간의 경인선이 대한민국 철도1호다.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던 1905년 일제는 부산~서울 간 경부선을 놓았고, 다음해 용산~신의주 간 경의선을 건설했으며, 1911년 압록강 철교가 준공되면서 부산~중국 단동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관통 철도`가 완성됐다. 그렇지만 `지금의 종착역`은 파주 도라산역이다. 마지막으로 운행됐던 열차는 포스코가 보존처리를 해 전시하고 있는데, “열차는 달리고 싶다”란 글귀가 가슴 아프다.

옛 포항역은 1904년 경부선보다 1년 먼저 생겼다. 당시 포항은 수산업의 거점도시였다. 영일만 구만리 해역과 구룡포 연안은 청어 정어리 꽁치 등의 산란지이고 고래 서식지여서 수산물 가공공장이 대거 들어섰고, 처음으로 수산은행이 포항에 생겼는데, 시인 박목월의 첫직업이 그 곳 은행원이었고, 음악가 금수현의 처가가 청하였다. 경제가 되니 유명인들이 찾아온 것이다. 당시 포항역은 경주까지 `좁은 철로`로 연결돼 수산물을 운반했다. 포항의 수산업이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말해주는 `포항 간이역`이었다.

1935년 부산진~울산~경주~포항까지의 동해남부선이 개통되면서, 포항역은 `북쪽 종점`이 되었다. 지금의 구 포항역사(驛舍)는 1945년 7월에 준공된 건물이다. 준공 한 달 후 해방이 됐으니, 포항역은 해방과 함께 태어난`해방둥이`건물이다. 101년의 역사를 가진 역이라면 그 자체로 당당한 문화재다. 그래서 코레일은 이 포항역을 `철도문화재`로 지정해서 전시실로 개조하는 등 `포항의 문화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포항시는 지곡건널목에서 안포건널목까지 4㎞를 재개발하기 위해 설계공모를 했고, `환원`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포항역이 지닌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보존 발전시키려는 계획이었다.

포항역은 찬연한 역사(歷史)와 추억이 쌓인 곳인데, 그 중 하나는 월남 파병 청룡1진이 떠난 1965년 10월 2일 이후 6년간 `장병과 부모의 작별` 그 눈물의 현장이었다. 1진이 떠나기 전날 박정희 대통령이 내려와서 장병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대통령의 체통도 내려놓고 곱사춤을 추기도 했었다. 월남파병은 박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 밤새 피운 담배꽁초가 재털이에 가득 찰 정도로 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심했었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와 국방력이 북한을 앞지르는 계기가 됐다.

그 문화재급 구 포항역사가 사라질 운명이다. 용흥동~대흥동 간 150m 도로를 내기 위해 구 역사를 허물겠다는 것이다. 죽도시장 가는 길을 더 만들기 위해서라는 데, 그 편익 때문에 찬연한 역사와 소중한 추억이 쌓인 문화유산을 헐어버리겠다고 한다. 역사의 현장이자 문화재인 구 포항역사를 살리면서 도로교통을 활성화하는 방안은 없을까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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