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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月城)복원의 특별한 의미

등록일 2015-09-10 02:01 게재일 2015-09-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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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문시장을 다녀간 박근혜 대통령이 경주 월성 발굴 현장을 전격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대통령은 “신라 천년 왕궁을 복원하는 일은 문화적 자존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했다. 문화가 경제를 선도하는 문화융성 시대에 신라왕궁 복원은 시의적절한 사업임이 분명하다. 때맞춰 북한 개성에서는 `500년 도읍지 만월대 발굴사업`이 남북 합작으로 진행중이다. 신라왕궁과 고려왕궁이 동시에 발굴 복원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통일 준비`의 일환이라 하겠다.

박 대통령이 신라 왕경 복원사업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있다. 1962년 4월 29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월성 빈터에서 열린 제1회 신라문화제에 가족들과 참석했고, 딸 박근혜씨도 아버지와 함께 몇 차례 경주를 찾았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경주를 일본의 교토 같은 고도(古都)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워 본격적인 발굴작업을 펼쳤다.

그 후 `궁정동 시해사건`으로 그 꿈이 좌절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으려 한다.

기원전 57년 박혁거세 왕은 6부 촌장들의 추대로 서라벌의 왕이 돼 부족국가 시대를 열었고, 지금의 대능원 근처로 추정되는 곳에 금성(城)을 지어 궁궐로 삼았다가, 서기 101년 신라 5대 파사왕때 월성(月城)으로 옮겼다. 남천(南川)가에 흙을 돋우어 대(臺)를 쌓고 그 위에 궁성을 지은 것인데, 개성의 만월대도 같은 방식으로 조성한 궁성이다. 월성에는 남문, 귀정문, 북문, 인화문, 현덕문, 무평문, 조례문 등이 있었고, 망덕루, 월상루, 고루 등 누각이 있었으며 정무를 보던 남당, 조례와 사신 접견용의 조원전 등 많은 전각들이 있었는데, 그 건물들을 순차적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신라는 국세(國勢)가 점점 강성해지면서 궁궐의 규모도 늘었는데, 월성 북쪽의 북궁(北宮)은 정부종합청사와 같은 기능이었고, 문무대왕이 삼국통일을 이룬 후에는 늘어난 업무를 위해 월성 동쪽에 태자궁과 월지(月池)를 지어 행정업무와 사신 접대용으로 사용했는데, 조선시대부터 이곳을 `안압지`라 불렀다. 이곳은 월지 발굴과 전각 복원이 일부 완성됐다. 안압지는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헌납한 현장이고, 마의태자의 눈물이 스민 곳이다.

대통령이 흙바닥을 디디며 발굴현장에 와서 관계자들을 격려했다는 것은 월성복원의 의지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말해준다. 그것은 신라천년의 영광을 되살려내겠다는 의지이며, 신라 고유의 건축예술을 세계에 과시하는 일이며, 경주의 관광산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쾌거이다.

특히 만경대와의 동시 발굴은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이다.

고려는 신라의 통치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국가라는 점에서도 두 궁성의 발굴 복원은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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