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20년만에 주연
이정현(35)이 1996년 데뷔작 영화 `꽃잎`이후 20년 만에 생애 두 번째로 여배우 원톱 주연을 맡았다.
오는 13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현은 “여배우가 원톱으로 끌고나가는 영화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큰 선물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정현은 미혼모로 분했던 `범죄소년`(2012)에 이어 이번 영화에도 노 개런티로출연했다.
제작비 3억여원의 저예산 독립영화이기도 했지만, 돈보다 `배우의 한`을 풀어야겠다는 의지가 앞섰기 때문이다.
“`범죄소년` 이후 소속사로 저예산영화 출연 제의가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소속사에서는 제게 시나리오를 넘기지 않고 거절 의사를 전달했죠. 소속사에서는 `명량`처럼 큰 영화를 하기를 원했나 봐요. 그러던 어느 날 박찬욱 감독님께 연락을 받았어요.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가 정말 근래에 보기 어려운 최고의 각본이라고 하시더군요. 박 감독님이 칭찬 잘 안 하는 분이시거든요. 시나리오가 단숨에 읽힐 정도로 정말 최고였어요. 첫 장면부터 눈을 뗄 수 없었거든요. 배우로서 연기 욕심이 커지면서 개런티도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됐죠.”
이정현은 데뷔작 `꽃잎`을 통해 5·18 민주항쟁 과정에서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미쳐버린 소녀를 연기, 당시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쳤던 1996년 당시 만 15세였다.
그러나 오로지 연기로 인정받을 듯했던 그녀는 1999년 돌연 가수로 전향해 테크노 음악의 선풍적인 유행을 이끌며 큰 인기를 누렸다.
“나이가 어려 맡을 수 있는 배역과 연기할 수 있는 폭이 한정적이었어요. 에너지는 넘치는데 답답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19살에 가수 활동을 시작했어요. 가수도 물론 좋은 곡을 만나야 하지만, 제 노력으로 음반을 제작해 활동할 수 있잖아요. 근데 연기는 누군가 저를 찾아줘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가수는 배우처럼 좋은 시나리오와 배역을 마냥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이정현의 가수 전향은 인생에서 대성공을 거둔 선택이었지만, 그녀에게 연기에 대한 갈증과 영화에 대한 간절함은 여전했다.
그러나 `꽃잎`으로 구축된 강한 이미지와 가수 활동을 하고 있던 탓에 10년 동안 국내에서 이렇다 할 배역이 주어지지 않았다.
“공포물 아니면 미친 여자 역할밖에 안 들어와서 너무 속이 상했어요. 현재도 기억에 남지 않거나 잠깐 이용되는 `소모적`인 역할이 많이 들어와서 차기작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어요. 불안하기도, 야속하고 서운하기도 해요.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질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면 좋겠어요. 시나리오가 너무해요.”
이정현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자신 탓에 남편이 식물인간이 됐다고 자책하며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육체노동을 전전하는 수남 역을 맡았다.
영화 속 오로지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하고픈 마음뿐인 수남의 순수함과 맹목적인 열정을 보면 배우 이정현의 연기 인생뿐 아니라 요즘 현실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통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이정현은 이번 영화를 위해 못 탔던 자전거와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우다 다치기도 했고, 비정상적으로 순수한 수남의 캐릭터를 위해 5살짜리 조카의 글씨체를 익히기도 했다.
또 돈 한 푼 받지 않고 출연한 이번 영화에 사비를 들여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의 아침 식사를 챙겼다. 그만큼 그간 연기에 대한 갈증과 이번 영화에 대한 열정이 컸다.
“모든 배우에게 가장 힘든 일은 기다림이죠. 그래도 어떻게든 견디고 기다려야 하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받으면 술 한잔하면서 풀고요. 이제는 배우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듣고 싶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