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중앙상가 25년 터줏대감들
포항의 중심지인 중앙상가 일대에서 25년 넘게 자리를 지켜 온 토박이 상점들이 아직도 많다. 그동안 포항시민의 문화 1번지로 불려 온 중앙상가는 포항의 성장·발전과 함께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행이 바뀌었고 기존에 있던 대부분의 상점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이런 세태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토박이 상점들을 소개하고 인기비결을 들어본다.
■ 7080부터 아이돌가수 음반까지 `신나라레코드`
오렌지족들 필수품 카세트테이프
잊혀진 앨범 찾는 매니아층 있어
“이야~ 그 레코드점이 아직도 있단 말이야?”
학창시절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구하고자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레코드점을 뒤적여본 경험이 있는 시민이라면, 여전히 포항에 `신나라레코드`가 있다는 사실에 놀람을 금치 못한다.
지난 1980년 `해변레코드`로 지역 내 첫발을 디딘 이곳은 1997년부터 `신나라레코드`로 상호를 변경해 운영하면서 현재 포항에서 비교적 큰 규모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레코드 전문점으로 알려져 있다. 20년 전만해도 유명 가수의 레코드나 테이프, CD 등을 구해 소장한다는 것은 팬들에게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가요톱10` 등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 음반 판매량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높았던 때였다. 이제 레코드점은 사양사업으로 분류돼 예전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잦은 편은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여성팬들이 주를 이룬다.
주부 A씨(30·북구 양덕동)는 “지난해 좋아하는 아이돌가수인 엑소(EXO)의 앨범을 구하고자 인터넷 카페 등을 수소문해 신나라레코드점에 있다는 정보를 얻어 어렵게 구했다. 그때 어찌나 기뻤는지, 이제와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주위 친구들 역시 중, 고등학생 때만큼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구하려는 열정은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레코드점은 `열혈팬`이었던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추억의 장소”라고 말했다.
신나라레코드점 사장은 “20년 전에 비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7080가수의 앨범을 찾는 매니아층이 있다”며 “최근엔 아이돌 가수의 음반을 찾는 중·고생들이 늘어 인기 있는 가수의 앨범은 항상 구비해두려고 한다”고 전했다.
학창시절 친구와 호호 불며 먹던 맛
첫아이 임신하고 먹어도 한결같아
포항시민이라면 `할매떡볶이`를 모르는 이가 없다. 혹여나 못 먹어본 사람은 있을지라도 할매떡볶이의 명성을 못 들어 본 사람을 없을 정도다. 이제는 인근 경주와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등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포항의 대표적인 `맛집`으로 꼽힌다.
지난 1980년 문을 연 할매떡볶이는 빨간 양념 버무린 매콤한 떡볶이로 지역 내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후 성인이 돼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여전히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할매떡볶이는 시민들 사이에서 학창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로 통한다. 최근 중앙상가 내 떡볶이 등 분식 체인점이 크게 늘었지만 그 틈새에서도 여전히 쟁쟁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이유다.
직장인 이태우(37·북구 장성동)씨는 “고등학교때 좋아했던 여자 친구와 학교 수업 마치고 종종 할매떡볶이집을 찾아갔다. 부족한 용돈으로 부담 없이 데이트하기엔 그 곳만한 장소가 없었다”며 운을 띄웠다. 그는 “그땐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데도 좋아하는 사람 앞이라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얼굴이 빨개진 채 마지막 떡까지 열심히 먹었었다. 수줍은 듯 용기 낸 모습에 반했는지 여자 친구였던 그녀는 5년 전 아내가 됐다. 우리 부부에게 할매떡볶이는 풋풋했던 시절의 순수한 사랑이 녹아든 곳이다”고 고백했다.
청춘남녀의 추억 담긴 `할매떡볶이`는 일단 상호가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이 집 떡볶이만의 특별한 양념 맛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인기비결이다. 고추장 양념이 진하면서도 매콤달콤한 소스 맛이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떡볶이를 순대, 파전과 함께 먹는 일반 분식점과는 달리 할매떡볶이 집은 핫도그를 곁들어 판매한다. 실제로 햄핫도그, 오뎅핫도그를 새빨간 떡볶이 양념에 버무려 먹으면 각각의 음식이 제 맛을 발휘해 놀라운 어울림을 혀끝으로 전한다. 이 맛에 학창시절 할매떡볶이를 맛본 이들은 직장인 또는 주부가 된 이후에도 발길을 멈추지 못한다. 지난 25년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게 간판에는 소탈함이 묻어난다. 일회용 그릇에 담아주던 포장 방식은 달라져 최근엔 용기에 깔끔하게 담아 건넨다.
주부 정소희(39·남구 해도동)씨는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입맛 없을 때마다 남편에게 부탁해 할매떡볶이를 먹곤 했다. 그래서인지 딸아이도 이 집 떡볶이를 좋아한다. 예전엔 친구들과 함께 와서 먹던 떡볶이를 이젠 딸아이와 찾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 사실 집에서는 아무리 시도해 봐도 할매떡볶이같은 맛이 절대 안 난다”며 웃었다.
■ 없는 것 빼고 있을 건 전부 다 있다 `포항문구센터`
중앙상가 거리 변해도 우직히 그자리에
학창시절부터 지금도 약속장소로 `든든`
어린 시절 `포항문구센터`는 아이들의 백화점과도 같았다. 모든 문구류들이 총집합돼 있어 이리저리 만져보고 둘러보는데 혼을 쏙 빼앗기기 일쑤였다.
초등학교 교사 유모(31)씨는 “어렸을 땐 이곳에 올 때마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게만 보였다”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포항문구센터 갈 때의 기분은 마치 엄마들이 백화점 갈 때의 기분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포항문구센터는 온갖 문구 제품들의 집합소다. 색 또는 종류별로 각종 학용품들이 전시돼 있어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포항문구센터 입구를 차지하는 인기 제품들 역시 계절 또는 유행 따라 매번 바뀐다.
포항문구센터와 탁 트인 공간 아래 이어져 있는 `학원사서점` 역시 여전히 아날로그적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고 가격 경쟁 또한 치열해지면서 서점을 직접 방문해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줄고 있지만, 학원사서점은 포항문구센터와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우직하게 한 자리를 지켜왔다. 한편으론 비교적 구매율이 낮은 전문서적들은 2층, 참고서나 문제집 등 여전히 회전율이 높은 서적들은 1층에 배치해 나름대로의 전략을 꾀하고 있는 것.
중학생 아들의 참고서를 구입하러 온 40대 주부는 “학원가기 바쁜 아들을 대신해 필요한 책을 구입하러 왔다”며 “포항문구센터나 학원사서점은 예전엔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도 자주 통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젠 간판조차 읽기 힘든 낯선 가게들이 중앙상가에 많아졌지만 익숙한 곳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어 든든할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지날 땐 괜히 마음까지 편안해진다”며 웃었다.
/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