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탐사<br> 다시 형산강에서… <bR>(10) 한국전쟁 형산강지구 전투
포항과 경주를 중심으로 한 형산강 일대는 역사적으로 천년 왕조, 그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음양을 오가며 끊임 없는 외침 속에 국난 극복의 현장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이 설치돼 전략의 요충이 된 포항의 운명은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역사의 강물에 피 흘린 청춘들의 못다한 꿈과 회한이 흘러내린 영일만은 이제 포항제철소의 불빛들이 진혼곡을 울리듯 밤바다를 비추고 있다. 형산강 전투에 참전한 청년 장교 박태준이 후일 제철보국의 사명을 안고 포항에 다시 돌아왔을 때, 신화는 기적이 아니라 필연임이 증명됐다.
□ `워커라인`의 요충, 포항
초기 한국전쟁사에는 포항과 영덕이 중심이 된 경북동해안의 전황이 피아(彼我)의 후퇴와 탈환을 거듭하며 급박하게 기술되고 있다. 이는 북한군 주력의 한축이 동해안으로 진출한 것이 주된 이유이지만 부산과 대구를 방어하기 위한 낙동강 방어선의 후미에 포항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전쟁 26일차인 7월 20일 충주 수안보의 전선사령부에서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는 독전명령을 내렸다. 이미 북한군은 전날, 포항 바로 위 영덕을 점령할 만큼 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22일 유엔 해군의 포격 지원 아래 국군은 이날 오후 영덕을 탈환한데 이어 미 1기병사단 제7연대는 포항에 상륙했다.
유엔군은 8월 3일에는 마산-왜관-영덕(이후 포항으로 수정)을 연결하는 신방위선, 이른바 `워커라인(Walker Line)`을 구축해 전력을 집중했다.
포항의 오천비행장은 F-51전폭기의 출격 및 지상군 지원기지였다. 포항은 또 동해지구에서 철도로 육로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항구시설을 갖춰 적에게 점령당할 경우 영천과 대구, 경주 방면 진출이 가능해 중요성도 컸다. 미 제8군은 브래들리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해 급파함으로써 포항의 비행장 사수에 매달렸다.
통칭한 `6.25형산강지구 전투`는 학도의용군 전투, 형산강 방어전 등 포항지구 전투, 기계·안강 전투로 구분된다.
8월 9일 적 5사단이 영덕 강구를 점령하고 12사단은 포항 죽장면에 이어 10일에는 선봉 1개 연대가 흥해 서쪽 6km까지 침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3사단 후방지휘소가 설치된 포항여중에는 71명의 학도병이 8일밤 자정께 임무를 자원해 찾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에게 지급된 무기는 오천비행장에서 미해병대로 부터 트럭으로 지원받은 M1소총 68정, 수류탄 3방, 탄환 2만여발이었다.
11일 새벽 4시경부터 시작된 적의 기습 공격에 실탄 250발씩으로 무장한 학도병들은 48명이 전사하는 11시간 반동안의 혈투를 벌였다.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20여만의 시민이 피난하고 북한군의 주 침공전선을 2시간동안 지연시켰으며 영덕 전선에서 고립된 3사단 주력부대가 철수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적의 기습에 놀란 포항의 동빈부두에는 서로 배를 먼저 타려는 피난민들이 바다로 떨어지는 등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이후 미 해병 비행대의 시내 폭격으로 포항 시가지는 폐허가 됐으나 18일 국군 제1군단은 포항과 기계를 완전히 탈환했다. 이후 포항은 북한군의 9월 공세에서 또다시 위기에 놓였다. 9월 2일 국군 3사단에 소속돼 배치된 학도의용군 32명은 지금 포항법원과 한동대가 위치한 양덕동 골짜기에서 전투를 벌여 많은 전사자를 낸 것으로 기록돼 있다.
형산강 방어전투도 경주의 곤계봉과 무릉산에서 피아가 9월 13일부터 9일간에 걸쳐 15번이나 고지를 번갈아 뺏는 격전을 펼친 끝에 북한군을 패퇴시켰다. 이후 형산강 일대를 포함한 동부전선의 위기는 마무리됐으며 인천상륙작전으로 총반격작전을 펼치는 전선이 포항에서 형성될 수 있었다.
현재 포항과 경주 등에는 형산강 일대 전투에서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기리는 기념시설물들이 설치돼 있다. 포항에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탑산)과 전몰학도충혼탑(탑산), 충혼탑(수도산), 학도의용군 6.25전적비(포항여고 앞), 이우근 학도병 편지 비(탑산) 외에도 미해병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와 포항지구전투전적비(송도동), 6.25전쟁 최후의 방어선(워커라인)기념비(해도공원) 등이 있다.
형산강의 파수꾼 최석규 동국대 교수
지난 5월11일 경북도 주관으로 경주에서 열린 형산강 프로젝트 정책토론회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토론자는 단연 최석규(57·동국대·사진) 교수였다. 최교수는 형산강의 수질 환경 및 수계 관리 부문에 있어 오랜 동안 연구를 축적해온 전문가로 손꼽혀 왔다.
경북도(김관용 지사)와 포항(이강덕 시장)·경주시(최양식 시장)가 형산강 협력 사업에 나선 중요한 시기를 맞아 관련 전문가의 조언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만큼 그의 역할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최근 활동은.
△2013년부터 동국대 생태교육원에서 생태 관련 비정규 과정을 통해 친환경해설사를 양성하고 동물매개치료, 기후환경변화 등을 강의하고 있다. 경주개 동경이 보존연구소 센터장도 맡고 있다.
-그동안 형산강 관련 사업들의 문제를 지적하면.
△하천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생태복원이다. 현재의 도심하천 정책은 인위적 공간 조성을 위해 생태와 수질을 부차적으로 생각한다. 하천 이용이 먼저이다보니 하수처리장 등 기초환경시설이 많이 확충됐지만 수질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공학적으로 유기화학물질이 상당량 제거됐지만 하천 내 생태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물 속에 수생생물이 적어 물고기 산란장이 줄고 파충류와 조류로 이어지는 하천의 `라이프 사이클`이 재생되지 않는 악순환이다. 먼저 자연형 하천을 복원해야 한다.
-형산강 사계절 수질조사 등 연구성과를 소개하면.
△하천의 생태는 사계절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동안 형산강은 물론 국내 대부분 하천의 사계절 연구조사는 거의 없었다. 이는 강에 대한 조사가 단기적인 개발사업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형식적인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단기 조사 결과를 관이나 기업이 잠깐 쓰면 된다는 자세가 문제였다. 국토교통부의 `고향의 강`조성사업은 반면교사이다.
지난 2001년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 및 경주환경련과 공동수행한 형산강 수질 및 수계조사는 그런 점에서 매우 의의가 크다. 여름철 수질 오염실태를 다른 계절과 비교하고 오염원까지 조사한 성과도 냈다. 이는 형산강의 생태복원에 대단히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그동안 후속 사업에 제대로 이용되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이번 사업에서는 되기를 바란다.
-경주와 포항시의 형산강 협력에 관해 조언한다면.
△하천은 원래 경계를 나눌 수가 없다. 외국은 하천 관리 규칙이 일원화돼 있다. 포항과 경주는 하천의 이용에만 관심이 있어 이해관계가 늘 충돌해왔다. 상류, 중류, 하류에 있는 지자체가 하천의 생태기능이라는 상식과 대원칙에 바탕해 고유한 역할을 할 때 하천 이용과 지자체 간 공익은 자연스럽게 조화된다. 일본처럼 체육공원을 조성하더라도 지자체는 예산만 지원하고 유지와 관리는 인근 주민에게 맡겨 민간이 주도하게 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임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