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탐사<BR>다시 형산강에서…<BR>(1) 프롤로그
형산강은 천년 왕국 신라의 영광을 키워낸 젖줄이었다. 또 현대사에서는 한국전쟁 격전지의 아픔을 딛고 마침내 제철산업의 성공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신화를 일궈낸 한 주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격동의 이면에서 환경은 오염되고 유역에 깃들어 사는 이웃 도시, 경주와 포항은 수계를 나누고 살아왔지만 그 모듬살이는 강의 혜택 만큼 그리 정답지는 않았다. 2014년 발아된 두 지자체 간 협력의 씨앗은 2015년 새해 들어 형산강을 매개체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키워 미래를 위한 공동 발전의 시기를 예고하고 있다. 본지는 연중기획탐사 `다시 형산강에서`를 마련해 형산강의 문화와 역사, 환경과 지리 등에 대한 총체적 보고서로 삼고자 한다.
종교·문학 태동의 젖줄
□ 형산강의 발원지㈔포항지역사회연구소(이사장 이재섭)는 포스코의 지원으로 1년 6개월에 걸친 답사와 연구를 거쳐 2002년 종합적 역사문화지리지(誌)인 단행본 `형산강`을 발간했다.
당시 발원지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에 이형석 한국하천연구소 소장은 `형산강의 발원지와 위상`을 통해 기존의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이 아닌 경주시 서면 도리임을 명확히 했다.
1983년과 1985년 등 두차례에 걸쳐 두 지역을 모두 답사한 이 소장은 형산강의 최장 발원지가 바뀜으로써 길이도 기존의 62㎞ 보다 약 3.3㎞가 늘어난 65.5㎞라고 정리했다. 이 같은 노력 등의 결과로 2000년 5월 건설교통부의 `한국하천일람`에 경주 발원지와 유로 길이 63.9㎞ 또는 63.95㎞가 기록·공인됐다.
□ 문학의 모태 형산강
형산강과 관련된 대표적 고전으로는 신라 시조신화와 연관된 알영정(閼英井) 고사, 찬기파랑가, 서거정의 한시, 원효 이야기, 신라 원화 남모(南毛)와 준정(俊貞) 이야기, 원성대왕 고사 등이다. 김유정 영남대 강사는 형산강의 지류인 문천과 원효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소개했다. 원효는 남산에서 내려와 반월성 뒤의 내에 있던 문천교를 지나다 일부러 물에 빠졌다. 그는 옷을 말리기 위해 들어간 요석궁에서 공주를 만나 설총을 낳게됐으니 인연의 강이라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형산강은 경주 출신의 김동리와 박목월을 낳았다. 무녀도의 배경인 애기청소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입구 경대교의 북쪽 300m에 자리한 물웅덩이로 `명주 실꾸리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깊다`고 기술돼 있다. 하류인 포항에서는 `보리`의 작가 한흑구, `동전 한닢`등의 동화작가 손춘익의 문심을 길러냈다.
□ 형산강과 종교
경주는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포덕(布德)에 일생을 바친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고향이다. 35세의 수운은 해발 500m의 구미산 계곡 용담정에서 후천개벽을 깨닫고 동학을 선포했다. 해월은 형산강을 건너다니며 동학을 포교했으며 포항 신광면 마북리에 은거하며 생업에 종사한 이후 강원도와 충청도 산간을 떠돌며 30여년 간 종교적 암행을 이어갔다.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골짜기의 진목정은 경북 동해남부의 몇 안 되는 교우촌 중 한곳으로 병인박해(1866년) 때 이곳에서 체포돼 순교한 김종륜, 허인백, 이양등으로 인해 한국 천주교의 성지가 됐다.
□ 하천 환경과 수계
형산강은 길이는 비교적 짧지만 울산과 경주, 포항 등 3개 지자체에 걸쳐 있어 수자원 이용과 수질 관리 면에서 민감한 갈등 요소를 안고 있는 하천이다.
2001년 경주환경운동연합과 포항지역사회연구소는 포항시 직원이 참가한 가운데 경주 서천 시외터미널 인근에서 포항의 형산강 취수보 하류까지 환경탐사를 했다. 이를 통해 형산강은 콘크리트 인공시설 설치 등으로 인한 하천 유지수 감소, 둔치의 불법 경작지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있음이 확인됐다.
당시 환경조사연구를 주도한 최석규 동국대 생태교육원 교수는 “13년이 흐른 지금 형산강은 외부 유입 오염물이 대폭 감소했다”면서 “하지만 포항 상수원의 상류인 경주 신당리 위쪽 희망촌 가축분뇨 유입 등의 오염원은 과거와 큰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14년전 `기록과 감탄의 여정`을 되새기며
아쉬움 함께했던 첫 탐사`형산강과 재회` 가슴 벅차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1년 포항지역사회연구소의 사무차장으로서 1년 6개월에 걸친 형산강 프로젝트를 수행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삶과 문화- 형산강`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됐다. 이 책은 강의 역사, 역사속의 강, 문화의 강, 강과 사람들, 강과 자연 등 분야별로 나눠 형산강을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아침이면 지도를 펼쳐들고 형산강 줄기를 따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답사를 떠나 해질녘이면 돌아오는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300개가 넘는 지류를 넘나들고 강을 따라 뻗어나간 숱한 산과 들판을 가로지르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형산강이 품었던 풍경과 사람, 역사와 자연을 살뜰히 기록하고 감탄하는 시간이기도 했었다.
내 작업실 한 켠에는 아직도 그 당시 답사의 과정과 흔적들을 일일이 기록한 축척 지도 백여장과 필름들이 그때의 공기를 담고서 조용히 잠들어 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의 어플을 이용해 길을 찾고 그 종적을 자동으로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당시엔 축척 지도를 들고 다니며 길을 찾고 그날 그날의 촬영 계획과 실행들을 기록했었다.
형산강 발원지에서부터 송도 앞바다의 합류지점까지, 크고 작은 지류들의 발원지에서 강과의 합류지점까지. 그 행적을 따라 분포돼 있는 문화유적과 자연경관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숱한 대화와 사건들. 분명히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곳을 직접 발로 디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가 본 곳보다 못 가본 곳이 더 많으며, 내가 본 것보다 더 적은 내용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는 아쉬움이 늘 함께 했었다.
`10년이면 강(江)과 산(山)도 변한다`고 했다. 이제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과 산의 변화, 그때 내가 보았던 형산강은 얼마나 변했을 것이며, 미쳐 발 딛지 못한 형산강은 또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가 궁금하다.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종이 지도에서 디지털 지도로, 앳띤 얼굴의 젊은이에서 중년의 나이로, 지난 14년 동안 나를 둘러싼 것들은 다양하게 변화됐다. 이러한 변화 도구를 가지고서 형산강을 만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
가장 아름답게 노을이 지는 곳과 가장 맛있게 음식을 내놓던 기사식당. 가장 운치있는 산책로와 왕릉 사이로 떠오르던 일출, 더위를 피해 어느 시골집 담벼락에 기대었을 때 등 뒤로 전해지던 그 시원함과 들판에서 길을 묻기 위해 만났던 어느 농부의 얼굴. 산기슭의 작은 암자의 곱게 빗질된 마당을 밟는 느낌과 찬 바람을 맞으며 강둑을 가로지르던 그 감촉과….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