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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군 서면 도리 `인내산 동쪽 계곡`서 63.9㎞ 여정 시작

임재현기자
등록일 2015-01-12 02:01 게재일 2015-01-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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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탐사<BR>다시 형산강에서…<BR>(2)강의 위상 재정립은 발원지 규명

▲ 태풍이 물러간 뒤 포항 남구 일대 형산강 하구의 모습. 멀리 포스코 포항제철소 옆을 지나 영일만으로 흘러든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강(江)의 위상은 그 규모에서 가장 먼저 알 수 있다. 하지만 강의 규모를 정하고 서로 비교하는 기준이 과연 `길이`인가, `수량`인가의 문제는 학계의 오랜 숙제이자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관련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형석 한국하천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2000년 당시 건설교통부가 발간한 `한국하천일람`의 기준이 타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천의 발원지는 하구로부터 먼 곳을 나타내는 최장의 발원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라시대 `굴연천`으로 불려져

우리나라 10大 하천에 들어가

강 유역엔 비옥한 평야 발달해

포항·경주 발전 `천년의 젖줄`

이에 따라 우리나라 10대 하천을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안성천, 삽교천, 만경강, 형산강, 동진강으로 나열해 놓았다. 그렇다면 형산강을 몇번째로 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여러 자료에는 영산강과 동진강을 10번째로 정하는 등 차이가 적지 않다. 이러한 근거들을 토대로 할 때 9번째에 속하는 것으로 정리하면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장은 형산강은 길이 순으로 남·북한을 통털어 26번째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형석 소장이 형산강의 길이와 최장 발원지에 대한 각종 서적(국어사전 2종, 백과사전 3종, 지리 관계서적 2종, 조선지지 자료)을 검토한 결과 1969년 이후에는 거의 `경남 울주군 두서면`을 기재했다.

하지만 `한글판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유일하게 `경주군 서면 도리`를 내세웠다.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건설교통부는 `한국하천일람`에 경주군 서면 도리 `인내산 동쪽 계곡`을 최장 발원지로 하고 유로연장(길이)은 63.9㎞ 또는 63.95㎞로 기록·공인했다. 이 소장의 자료에도 다소 혼선은 엿보이는데 65.5㎞로 표기한 것이 그 사례이다.

형산강은 신라시대에는 `굴연`(掘淵) 또는 `굴연천`으로 불렸으며 1861년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형강`(兄江)으로 기록됐다. 1486년 `동국여지승람` 경주부 편에 `형산포(兄山浦):안강현의 동쪽 24리에 있다. 굴연의 하류이며 어량(漁梁)이 있다` `경주부의 동천, 사등이천, 서천 등의 물은 모두 형산포로 들어간다`고 기록돼 있다. 다시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형산강 유역 내에 위치한 취락은 경주, 영일, 안강, 기계 등으로 표기됐다.

㈔포항지역사회연구소가 2002년 발간한 `형산강`에 이형석 소장은 형산강과 인접 하천의 수계를 나누는 산, 고개 등 분수령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형산강 하구 북단-도음산-비학산-성법령-사관령-배실재-첨곡산-서당골재-불릿재-운주산-이리재-도덕산-자옥산-삼성산-시티재-어림산-관산-사룡산-당고개-안석산-소호고개-백운산-천마산-북안고개-동산령-토함산-추령-시루봉-운제산-은정재-서원재-형산강 하구 남단.`

형산강은 그 주변에 교통의 요지를 이루고 있는데 하천으로서는 크지 않고 지류도 많지 않으나 유역에 비옥한 지구평야를 발달하게 함으로써 경주와 포항의 젖줄이다.

멀리는 천년 역사의 신라에서 현대에 들어 하구에 자리잡은 포항에 포항종합제철이 들어서기 까지 역사 속에 우뚝 솟은 강이다. 그 강의 언저리와 이를 내려다 보는 골짜기의 굽이굽이에서 인물이 나고 문화가 샘 솟아 오늘에 이르렀다.

다시 먼 길의 출발을 `兄山`에서 시작하다형산강은 울산과 경주, 포항 일대의 크고 작은 산들에서 발원한 수 백개의 지류들과 합류해 동해로 흐른다. 형산강에 대한 이 간명한 글귀 속에 고대 삼국 통일의 위업과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 천 년의 역사와 근현대의 역사들과 함께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흘러 왔고, 흐르고 있다.

300여 개의 지류들과 몸을 합친 형산강이 크게 한 번 휘돌며 경주를 지나 포항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곳이 형산(兄山)과 제산(弟山)이 마주한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와 국당리이다. 형산강 하류의 시작이라고 하겠다. 신라시대 전설에 의하면 형산과 제산은 형제산으로 서로 붙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남천, 북천 기계천의 물이 안강 일대에 모여 호수를 이루고 있었고, 이 호수가 자주 범람하여 이 일대의 피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경순왕의 아들 태자 김충이 용이 되어 꼬리로 형제산을 내리쳐서 형산과 제산으로 갈라지게 됐고, 그 틈으로 안강 호수의 물이 강을 이루어 영일만으로 흘러들어가 지금의 형산강이 됐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내륙에서 내려온 물이 지금처럼 곧바로 영일만으로 유입되지 못하고 강동지역의 퇴적물에 막혀 안강과 단구리 일대에 거대한 호수가 형성됐음을 볼 수 있다. 이 일대의 침수문제는 왜구의 침입과 함께 신라시대 통치자가 풀어야할 중요한 숙제였다고 하겠다.

형산 정상에는 왕룡사원이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신라시대에는 형산사, 이후에는 옥련사, 그리고 왕룡사에서 지금은 왕룡사원이라고 칭한다. 국당마을에서 북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절에 도착하게 되는데, 절의 좌측으로 멀리 경주로부터 흘러온 형산강이 안강평야를 가로질러 형산 아래에 이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우측으로는 형산과 제산을 가르고 멀리 영일만으로 흘러가는 강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비교적 유량이 풍부한 곳으로 1832년 기록된 경상도읍지에 의하면 형산강 하류에 큰 시장이 존재했었음을 알려 준다. 이 시장은 부조장으로 1900년대 초반까지 서해 강경장, 남해 마산장과 함께 남한 3대 시장 안에 들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었다고 한다. 한편 강 포구에 윗 부조장(강동면 국당리)과 아랫 부조장(연일읍 중명리) 두 곳의 시장이 개설되었는데 선박 접안이 용이한 아랫 부조장이 크게 성행해 전국적으로도 이름난 시장이었다고 한다.

아랫 부조장이 열렸던 연일읍 중명리 마을회관 앞에는 `현감 조동훈 복시 선정비`와 `현감 남순원 선정비`가 나란히 서는데 비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당시의 부조장이 얼마나 큰 규모를 자랑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강 어구의 좌우양안(左右兩岸)으로 범선들이 열을 지어 늘어섰다. 함경도, 전라도 등 각 방면의 상선과 어선들이었다. 배들이 달고 선 황포 돛들이 바람 속에서 도도하게 펄럭였다. 장에서 구입한 물건을 바리바리 짊어진 조랑말들이 마부를 따라 길을 가득 채웠다`

형산의 정상에서 우측을 통해 바라보는 형산강의 모습에서 황포돛대를 단 배들이 멀리 영일만을 거쳐서 지금의 송도와 해도, 상도동을 지나 형산 아래의 부조장으로 밀려들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좌측의 풍경을 통해 물건을 이고진 조랑말 행렬들이 형산강을 건너고 안강들판을 지나 경주와 영천, 대구, 청송, 안동 등의 경북 내륙으로 흩어지던 풍경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형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포항 일대는 다시 지류로 분화돼 5개의 섬(송도, 해도, 상도, 대도, 죽도)과 3개의 호수(환호, 두호, 아호)를 형성하며 영일만으로 흘렀다고 한다. 비록 그 당시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이러한 지형은 지명에 남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형상강의 유량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시적으로 내리는 강우에 의해 삽시간에 포항과 경주 일대는 300여 개가 넘는 지류를 따라 불어난 강물로 인해 잠식되곤 했다. 거기다 꾸준히 물살을 타고 흘러 내려온 육지의 퇴적물과 해수에 밀려온 퇴적물들이 쌓이게 되면서 유량이 적을 때에는 일시적으로 육지의 섬이 형성되는 형국을 만들곤 했다.

▲ 태풍이 물러간 뒤 포항 남구 일대 형산강 하구의 모습. 멀리 포스코 포항제철소 옆을 지나 영일만으로 흘러든다. <br /><br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김규형 작가는?

포항 출신의 사진작가로 ㈔포항지역사회연구소에 소속돼 1년 6개월 동안의 형산강 답사와 조사의 결과를 모아 2002년 단행본 `형산강` 발간에 참여했다. 개인전 및 다수의 기획전을 열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의해 한국의 사진작가로 선발돼 `노마딕 레지던스 in 몽골`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경주에 작업실을 두고 기획 및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김규형 사진작가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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