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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경쟁을 초탈한 물길, 추억·아련함을 벗삼아 흐르고

김규형 사진작가
등록일 2015-01-26 02:01 게재일 2015-01-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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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탐사 다시 형산강에서… <Br>(3)강 유역 간이역을 찾아서
▲ 형산강과 안강평야를 가로질러 포항으로 들어오는 KTX 선로.

형산강을 건너지 않고서 포항과 경주로 들어올 수 없고, 나갈 수도 없다. 우리나라 10대 강 중의 하나인 형산강은 300여 개가 넘는 지류를 가지고 있으며, 포항과 경주 일대에 핏줄처럼 이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형산강을 건너다니고 있는 셈이다.청어·소금 실은 황포돛배 수없이 오가던 옛시절을 지나

강줄기 가로지른 동해남부선 철도 KTX에 그자리 내줘

변함없는 모습의 형산강, 느림의 미학 간이역 서로 닮아

▲ 동해남부선 철도는 형산강을 가로지르거나 나란히 하면서 놓여 졌다.
▲ 동해남부선 철도는 형산강을 가로지르거나 나란히 하면서 놓여 졌다.

예로부터 형산강을 따라 촌락이 형성됐고, 크고 작은 시장들이 형성됐으며 조선 후기부터 전국 3대 장의 하나로 전국의 이름난 시장으로 성장했다. 대략 1780년대부터 1905년까지 융성해 함경도 일대의 명태, 강원도의 오징어, 포항연안의 청어와 소금을 경상도 일대의 내륙으로 팔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농산물을 교육하는 상거래의 중요한 요지로 지금의 연일읍 중명리 일대의 형산강 유역에 수많은 황포돛대와 객주, 여각, 창고, 판매업 숙박업이 번성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교통 요충지였다고 한다.

당시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연일읍 중명리에 세워진 `현감 조동훈 복시선정비`를 보면 `깃발과 점포가 안개처럼 열을 세웠으니 모두가 봄날을 만났다네`라고 기록하고 있다. 황포돛대와 각 상단의 깃발과 점포에 내어 걸린 간판들이 형산강 일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형산강 유역 교통의 수단이 바뀌게 된 것은 조선총독부의 철도개설이다. 1925년 조선총독부는 약탈을 위한 물자 수송을 위해 `조선철도12년계획`을 세우고 1927년부터 실행하게 된다. 이 계획에는 석탄, 목재, 광물, 해산물의 본국 반출을 위해 부산과 함경선을 연결할 목적으로 동해선 건설의 계획이 포함된다.

구간별로 개설되던 동해선은 1936년 12월 1일에 울산~경주 구간을 표준궤로 개량 개통하고 이어 경주~포항 구간도 표준궤로 개량됐다. 그리고 1940년 4월에 포항~흥해간 12㎞ 구간이 개통됐다고 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공사는 중단되고 동해선은 안변~양양 구간의 동해북부선과 부산진~포항 구간의 동해남부선으로 분단돼 연결되지 못한 채 오늘날에 이른다.

부산을 출발해 바다를 끼고 울산을 거쳐 경주로 이어지는 동해남부선은 형산강과 나란히 하며 종착역인 포항으로 이어진다. 형산강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나란히 하기도 하며 사연 깊은 역들을 지나 수 십년 동안 주요한 교통수단이 됐다.

▲ 경주시 안강읍 사방리에 있는 사방역 역사.
▲ 경주시 안강읍 사방리에 있는 사방역 역사.

□ 동해남부선, 형산강 유역의 역(驛)들

형산강 유역의 동해남부선은 경주역을 지나 나원역~청령역~사방역~안강역~양자동역~부조역~효자역~포항역으로 이어진다. 1998년(정선선은 2000년 11월 14일까지 운행)까지 운행되었던 비둘기호는 앞서 소개한 모든 역에 정차했으며, 인근 주민들의 소중한 발이 돼 줬다.

경주역과 나원역, 안강역, 효자역, 포항역을 제외하고는 승무원과 대합실이 없는 간이역이다. 그리고 지금은 경주역과 안강역 효자역, 포항역을 제외하고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한때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거점지이며, 세상의 소식과 물류들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기도 했다.

이후 비둘기호가 운행을 중단하고 최하위급 열차로 격하되었던 통일호마저 통근열차로 명칭이 바뀌게 되면서 나원역, 청령역, 사방역, 양자동역, 부조역은 2007년에 이르러서는 일체의 여객 취급을 중지하게 된다.

▲ 형산강 변에 위치한 간이역 청령역.
▲ 형산강 변에 위치한 간이역 청령역.

청령역, 양자동역은 처음부터 역사도 없었다. 철로변에 지붕을 얹은 플랫폼과 의자가 전부였으며, 철길 아래 구멍가게에서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매년 한 번씩은 이들 간이역을 찾는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이나, 녹음이 짙푸른 7월의 간이역은 다양한 이야기와 풍경, 추억과 아련함이 함께하는 공간이 된다.

현대사회는 계속해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다. 모든 변화와 발전은 `속도`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 속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간이역은 역설적인 존재다. 비둘기호가 그랬고 통일호가 그러했듯이, 또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KTX라는 무서운 속도를 가진 경쟁자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 경주시 현곡면 나원리에 있는 나원역.
▲ 경주시 현곡면 나원리에 있는 나원역.

간이역에는 역 이름이 적힌 표지판과 벤치가 전부다. 그 벤치에 앉으면 일상생활에서 달려왔던 모든 속도를 가진 것들이 잠시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과 같은 기분이 빠져든다. 빈 철로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속도와 푸른 하늘 위에 흘러가는 구름의 속도만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우리의 삶을 곧잘 기차여행에 비유한다. 태어남이 출발역이고 죽음은 종착역이다. 인생행로의 크고 작은 일들을 기차역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간이역을 찾을 때면 내 인생의 어느 행로쯤을 가고 있는가를 되짚어 보게 된다. 지금 어느 역을 통과해 어느 역을 향해 가고 있는가, 지나온 길을 반추하고 새로운 준비를 위한 사색의 장소가 돼 주곤 한다.

▲ 포항 효자역.
▲ 포항 효자역.

□ KTX라는 또 다른 속도를 가진 형산강

속도의 경쟁과는 반대로 우리의 삶은 많은 간이역에 정치하는 삶이 더 행복할 것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는 삶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반추할 수 있는 추억이 그만큼 많음을 의미한다.

내 인생의 어디쯤을 어떤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가. 한 번쯤 일상의 속도에서 잠시 이탈해 되돌아볼 장소로서 간이역은 최적의 장소가 된다.

자동차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7번 국도와 더불어 사통팔달 도로가 건설되고 기차 여객 수는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여기에다 KTX의 등장으로 속도에 밀린 추억의 열차들은 기억 속에서 급격히 사라지게 된다. 출퇴근과 등하교 시간, 장날이면 분주했을 간이역 또한 급격히 쇠락해져 갔을 것이다.

2015년 상반기면 KTX 포항~서울 직결선이 개통되어 2시간 10분이면 서울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포항은 전국 반나절 생활권에 본격 편입되면서 경제·사회·문화·관광 등 일상생활 전 분야에서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제 형산강은 황포돛배와 달구지에 이어 KTX라는 엄청난 속도를 갖게 됐다. 형산강을 가로지르고 안강들판을 지나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갈 KTX.

예나 지금이나 강물의 속도는 변함이 없다. 그때의 속도와 지금의 속도가 같을 것이며, 예전의 물길이 큰 변화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형산강을 제외하고 그 위를 가로지르거나 그 주변을 달려가는 모든 것들이 속도를 바꾸어 왔던 셈이다. 비록 또 다른 속도가 등장하더라도 형산강은 변함없는 속도로 영일만으로 흘러갈 것이다.

/김규형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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