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중에 번개맨이 있다. 번개맨은 일반 영웅들처럼 처음에는 악당들에게 당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착한 마음을 지닌 이들, 특히 어린이들의 절대적인 응원으로 힘을 회복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악당들을 물리친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응원으로 다시 살아나 악당들을 무찌르는 번개맨을 보면서 무한 감동과 함께 정의에 대한 환상을 키운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데에는 번개맨의 역할도 크지만, 항상 번개맨에 의해 뜻이 좌절되는 “나 잘난, 더 잘난”도 큰 몫을 한다. “나 잘난, 더 잘난”은 악(惡)의 특성상 처음에는 번개맨을 이기는 듯하다. 그들은 그 승리감에 도취되어 세상 전부를 얻은 것처럼 즐거워한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항상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은 패배의 원인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면서 쓸쓸히 퇴장한다.
“나 잘난, 더 잘난”이 번개맨과의 대결에서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네 탓”이라는 어설픔 때문이다. 어설픔은 무모(無謀)함을 부른다. “앞뒤를 깊이 헤아려 생각하는 분별력이나 지혜가 없음”이라는 뜻처럼 무모함은 판단력을 흐려 착각에 빠지게 한다. 착각은 자만으로 이어지고, 자만은 다시 오만과 교만을 넘어 거만(倨慢)을 낳는다. 거만에 빠진 이들은 하나 같이 때 이른 승리의 축배를 마신다. 하지만 그들은 착각에 빠져 그것이 독배인지 모른다.
메르스 창궐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보인다. 필자가 보기엔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번개맨과 너무도 흡사하다. 언제나 그렇듯 국가적 사건이 발생하면, 항상 짠하고 나타나 자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이 있다.“나 잘난, 더 잘난”을 닮은 그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지금의 문제 상황은 모두가 무능한 정부 탓이라고.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섰다고.
메르스는 이 나라엔 잘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한 번 더 증명해주고 있다. 그 잘난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떠들어 댄다. “네 탓이오, 네 탓이오.” 그들에겐 예의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조건 떠들고 본다. 그래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이면 또 착각에 빠져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더 크게 떠든다.
잘난 분들이 워낙 많은 대한민국은 지금 산으로 가고 있다. 산 이름은 메르스! 산으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 호엔 공포와 불신만이 가득하다. 그 공포에 제일 먼저 관광이 얼어붙었다. 수만 명의 외국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방문을 취소했거나, 또 하고 있다. 취소 사태는 문화 체육 분야로 이어지고 있는데, 콘서트들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개봉을 앞두고 있던 영화들은 개봉 시기를 연기했다. 야구, 축구 등 프로 경기 관중 수도 급감했다.
대한민국 호는 지금 도미노에 빠졌다. 문화, 경제 등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요소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그런데 문화, 경제의 위축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사회적 불신이다. 믿을 수 없기에 우리는 함께 하지 못한다. 불신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다. 분열은 새로운 갈등을 조장한다. 갈등은 또 불신을 만들고, 불신은 더 강한 분열을 양산한다. 불신, 갈등, 분열의 소용돌이에 말려드는 순간 문제 해결은 영원히 멀어지고 만다.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백신도 중요하지만 우선 실종된 믿음부터 되찾아야 한다. 믿음을 주지 못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만이 잘 났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다. 번개맨과 “나 잘난, 더 잘난”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절대적 믿음을 받는 번개맨은 꼭 악을 물리친다는 것과 “네 탓”만 하는 “나 잘난, 더 잘난”은 항상 망한다는 교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