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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을 이기는 콩 세 알

등록일 2015-04-29 02:01 게재일 2015-04-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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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계절의 여왕 5월이 목전이다. 그런데 한 많고 말 많은 4월에 밀려 푸른 달 5월이 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감사와 나눔이 있기에 푸르다는 5월, 감사도 나눔도 먼 나라 이야기가 된 이 나라에 5월은 더 이상 푸르지 않다.

4월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말하기에 바쁘다. 노란 리본을 맨 사람들은 “진실을 인양하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 말보다 다른 말이 더 크게 들리니 과연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월호 옆 광장엔 총파업이라는 붉은 깃대를 든 사람들이 “인금 인상”을 한 목소리 외치고 있다. 워낙 할 말이 많은 나라이기에 광장은 외침의 장소로 늘 비좁다. 그래서 외칠 것이 있는 사람들은 길로 몰려나온다. 요즘 길거리에 떼로 몰려나온 사람들의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그곳은 청와대!

가려는 자가 있으면 막으려는 자가 있는 법. 종착지가 청와대인 사람들의 여정은 늘 힘들다. 특히 구호(口號)와 함께 떼로 청와대에 가려는 자들은 자신들을 막으려는 자들의 강력한 벽에 부딪힌다. 벽이 강할수록 그 벽을 넘으려는 힘도 강해진다. 벽은 방패가 되고 넘으려는 힘은 창이 된다. 창과 방패의 대결은 어느 한쪽이 포기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많은 희생을 낳는다고 역사는 말해준다.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 그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다는 방패와 세상에 뚫지 못할 방패는 없다는 창.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창과 방패뿐이다. 기를 쓰고 뚫으려는 창과 더 기를 쓰고 막으려는 방패, 그 창과 방패가 겨루는 소리에 이 나라가 너무도 혼란스럽다. 그 혼란스러움에 주눅 든 경제는 얼어붙었다. 어쩌다 이 사회가 모순만 가득한 사회가 됐을까?

나만 옳고 다른 모든 이들은 틀렸다는 모순주의자들이 연일 뉴스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그 주인공 가운데는 인성교육진흥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국회의원들도 있다. 그들은 인성의 주요 덕목으로 정직, 책임, 존중, 배려, 공감, 소통, 이해, 나눔, 양보 등을 내세웠다. 그런데 세월호, 성완종 사건 등을 보면 정작 자신들은 이것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다.

모순은 국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 시장에도 큰 모순이 존재한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의 수가 통계 시작 후 최고치라고 한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월급을 더 올려달라며 총파업을 하겠다고 하니 이 또한 모순이 아니고 뭘까. 고통분담을 그토록 외치고 있지만 노동 시장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은 손톱만큼도 손해를 보려하지 않으면서 “더, 더, 더”만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청년 실업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모순은 정치, 노동뿐만 아니라 교육계에도 있다. 그것도 아주 큰 모순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자신의 개성에 맞는 꿈과 희망을 가지라고, 경쟁보다 협동하는 사람이 되라고, 세상은 평등하다고, 우리 사회는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아름다운 사회를 위해서는 조금 손해 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그런데 과연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런 삶을 실천하는 선생은 얼마나 있을까.

모순 가득한 이 나라의 5월은 절대 푸르지 않다. 푸름을 잃은 사회에 밝은 미래란 없다. 더 푸른 5월이, 더 희망찬 미래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콩 세 알 이야기를 인용한다.

아버지가 말했다. “농부가 콩을 심을 때 세 알씩 심는다. 왜 그러는지 아니?” 아들이 갸우뚱해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한 알은 공중의 새들 몫이다.” “또 한 알은요?” “땅 속의 벌레들 몫이지.” 아들이 말했다. “그럼 한 알만이 주인 몫이군요.” 아버지가 말했다. “나누는 마음 없이 한 알만 심어 수확을 기대하다가는 빈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회, 정부, 노동계, 교육계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콩 세 알을 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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