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론은 매우 이중적인 단어이다. 예를 들면 한 회사에서 리더는 사원들에게 조직 안팎에 닥친 위기를 부각시켜 더 강한 노동강도와 원가 절감의 당위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할 수 있다. 하지만 사원이 조직의 위기를 지적하면 이는 윗선으로부터 분발의 각성으로 인정받기 보다는 마치 노조 활동을 부추기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이는 포항에도 마찬가지다. 이젠 새삼 그 근거를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포항이 위기를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따지고 보면 `포항 위기론`이 뜬금 없다고 받아들여질 만큼 호시절이던 시기에 이 논란에 불을 당긴 장본인은 허대만 새정련 지역위원장이었다. 당시는 재선에 성공한 정장식 전 시장이 재임하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위기론 주장의 요지는 포항의 인구가 정체·감소하고 철강 업종 일변도의 고착화로 미래 전망이 불안하니 지역전체가 긴장하자는 것이다. 여당이 독식하는 포항의 정치판도에서 그 의도를 두고 마치 정략적인 `외곽 때리기`처럼 비춰졌던 `휘슬 블로워`(Whistle blower)류의 문제제기는 결국 10여년이 지나 탁견이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때도 허 위원장은 위기론을 제기했다가 시장의 측근과 엉뚱한 난타전에 휘말렸으니 적잖이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포항에 대한 걱정을 공론화함으로써 지역발전의 에너지로 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포항의 정치적 역학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포항의 위기를 거론하면 마치 정치인들에게 낙제점을 줘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의도가 있는 것처럼 내몰렸기 때문이다. 요순우탕(堯舜禹湯) 시절에도 우국지사는 있었거늘 화끈하게 내뱉고 보는 포항의 기질이 유독 정치인들에게는 조심스러워지는 기제가 포항에는 작동돼 왔다. 이는 할 말은 하고 봐야 하는 포항의 지식인 지층이 이런저런 이유로 엷어지거나 여러 세력에 편입된 풍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마치 장사를 하듯 단체를 운영한 문제 인사들을 제때 솎아 내지 않은 원죄는 포항의 시민단체 전반을 여전히 암흑기에 머물게 하고 있다.
포항의 미래와 운명이 직결된 포스코에 대한 담론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포항과 포스코는 함께 인생의 길을 가듯 희노애락(喜怒哀)과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세월을 보내왔다.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내며 마치 거울 앞에 선 듯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양자 간에는 건전한 소통의 말길이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았다. 민족기업이자 국민기업인 포스코에게서 미동하던 위기의 촉감은 국민의 전위에 선 지역민들에게 가장 먼저 감지됐었다. 이런 소통의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형성돼 있었더라면 포스코에 대한 지역의 애정 어린 염려는 여론이 되어 국가 전체로 공유될 수도 있었다. 그랬더라면 문제에 대한 진단과 조치는 검찰이 나선 지금의 엄혹한 상황보다는 훨씬 더 합리적인 방법으로 동원됐을 것이다. 앞으로도 포스코에는 지역사회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처해진 형편을 털어 놓고, 협조를 구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며 이는 지역도 마찬가지다. 특히 포스코가 지금의 위기를 선제적으로 타개하려면 무엇보다 국제 경쟁력 회복이 관건이다. 따라서 원가 절감을 위해 지역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장치의 도입이 필요하다면 이제는 포항시가 중심이 돼 시민을 설득하는 방법도 모색해봐야 한다. 또 지역의 중대 현안을 논의할 플랫폼 기능이 유명무실해진 포항지역발전협의회를 명실상부하게 복원해 포스코의 재도약을 위한 민·민 간 합의의 주체가 되게 하는 것도 더 이상 상상에 머물러서는 안 될 일이다.
이미 거론한 바 있지만 홍철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포항 출신으로서 보수성이 남다른 대구에 전입해 지역의 혁신을 촉구하는 쓴소리를 쏟아낸데 이어 아예 `진짜 대구를 말해줘`를 발간했다. 이어 고향을 위해 `포항, 이제 어떻게?`까지 펴냈지만 아직 진짜 포항에 대한 말들은 많지 않다. 이젠 정말 포항을 얘기해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