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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점 학교의 갑 선생과 을 학생

등록일 2015-04-22 02:01 게재일 2015-04-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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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올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와의 대화다. “아빠, 나 벌점 2점 받았어.” “왜 벌점 받았니?” “실내화 때문에.” “실내화를 안 가져갔구나.” “아니, 가져갔는데 갑자기 실내화가 찢어졌어. 밖에 비가 와서 현관 내려가는 계단에서 실외화를 신었는데, 선생님께 걸렸어.”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지 그랬니.” “말씀드렸는데, 벌점 제도에 따라 벌점을 주셨어.”

실내화를 확인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딸아이와 벌점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했다.“벌점이 쌓이면 어떻게 되니?” “20점이면 엄마 소환, 30점이면 교내봉사, 40점이면 사회봉사, 50점이면 강제 전학.”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딸아이는 줄줄 외웠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씁쓸했다. 그러다 문득 지난 학교의 일이 떠올랐다. “선생님, 상점주시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벌점이 얼마니?” “30점요.” “또 뭘 잘못했니?” “몰라요, 담임 쌤이 지시 불이행이라며 15점을 주셨어요.” “좀 잘 하지 그랬니. 그래 뭘 할 수 있니?” “뭐든 다 하겠습니다.” “그럼 책 2권 읽고 느낀 점을 국어 시간에 이야기해. 숙제야.” “네, 그런데 선생님 오늘 상점주시면 안 될까요?” “왜?” “오늘 징계 결정이 난대요.”

필자가 줄 수 있는 상점의 최고점을 찾아보았다. 상점은 5점이 최고였다. 그 학생은 국어 시간에 발표도 잘 하고, 수업 태도도 좋고 해서 필자가 줄 수 있는 최고점을 주었다. 하지만 그 학생은 결국 사회봉사를 받았다. 그리고 한 학기에 두 번 사회봉사를 받았기에 등교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참 아이러니한 건 두 번의 사회봉사와 등교정지 모두가 담임교사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이가 그 반에 한두 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상벌제도에 대해 그 선생과 몇 차례 심한 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면 그 선생은 언제나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벌점을 주고 안 주고는 내 마음인데 왜 선생님이 참견입니까?” 그러면 필자도 말했다. “그럼 상점을 주고 안 주고는 제 마음인데 왜 뭐라고 하십니까.” “벌을 주려고 벌점을 주면 상점을 주니까 그렇죠.” “그린마일리지 제도가 학생들을 사회봉사 보내라고 만든 제도입니까?” 이즈음 되면 교무실 분위기는 싸늘해진다.

그린마일리지 제도를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린마일리지 제도란 교내에서 학생에 대한 체벌을 근절하면서 학생들의 학습 및 생활지도를 위해 2010년 3월 시행된 학생 상벌점제를 말한다. 잘못된 행동을 한 학생을 체벌하는 대신 벌점 부여와 상담과 순화교육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하며, 칭찬받을 행동을 한 학생에게는 상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설명만 보면 참 이상적인 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무리 좋은 제도도 우리나라 교육을 만나면 왜곡되어 버린다. 그린마일리지 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상벌점제를 분석해보면 상점 항목보다 벌점 항목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제도는 체벌 대신 벌점으로 학생들을 구속하는, 그래서 결국은 갑 선생과 을 학생의 벌점학교를 만드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도를 비롯한 몇 몇 지자체에서는 상벌점제를 폐지하였다.

“상벌점제 운영은 학생들의 준법정신이나 질서의식을 함양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학생 상벌점제는 교육의 필요수단이다”라며 상벌점제의 이상(理想)을 말한 어느 교육학자도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학생들에게 “준법정신, 질서의식”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나 있는지 그 교육학자에게 묻고 싶다.

필자는 필자를 비롯한 모든 교사들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가 학생들에게 벌점을 줄 자격이 있습니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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