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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權)유착이 남긴 비극

등록일 2015-04-16 02:01 게재일 2015-04-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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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세상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 한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등 정권 실세들에게 모두 줄을 대고 로비를 해왔다”란 말도 나오고, 하루 세끼 식사는 모두 로비의 기회이고, 그것을 일기형식으로 써 남겼다. 그 로비일지가 공개되면서 정·관계는 회오리바람에 휘말렸다. 박근혜정부의 부패척결 행보는 초입부터 태풍급 부메랑을 만났다. 전 정권들처럼 `적당히 덮고 넘어갔으면` 찻잔속의 태풍 정도일 수도 있었을 것인데, 너무 단호히 나간 합병증이란 소리도 나온다.

성 전회장은 MB정권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일원이 됐고, 4대강 사업에 참여해서 간신히 명줄을 잇기도 했다. 노무현정권때는 두번이나 특별사면을 받았다. 자민련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와 행당도 개발 비리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비공개 사면` 대상에 포함돼 특혜 중의 특혜라는 비난도 받았고, “돈의 힘이 이렇게 강력한가”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러나 그 `돈의 힘`도 박근혜정부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기업체의 계좌는 깡통계좌가 됐고, 정권실세 어느 누구도 예전처럼 도와주지 않았으니, 같이 죽자며`보복 폭로`카드를 던지고 세상을 마쳤다.

은행들은 평소 성 전 회장을 마뜩잖게 보고 있었다. 수출입은행 측은 “경남기업은 경제나 시장 논리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을 앞세우는 불편한 관계였다”고 했고, 신한은행도 “자본이 잠식됐는데도 자료 제출 요구는 무시하고 돈만 요구해 온 지저분한 거래선”이라 했다. 권력을 앞세워 무리한 대출을 일으킨 결과가 부실로 이어졌고, 결국 `올 것이 온`것이었다. 경남기업은 베트남 하노이에 지은 `랜드마크 72`에서 무리를 했다. 자금회전은 되지 않는데, 건설경기 침체가 결정타였다. 4대강사업으로 `산소호흡기`를 달기는 했으나, 워낙 로비자금을 많이 뿌렸으니 재정이 견뎌내지를 못했다.

경남기업은 2013년부터 순손실 2000억원대의 뇌사상태에 빠졌고, 막판에는 “돈이 없어 변호사 비용도 동생들이 댈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설상가상으로 이 회사가 `부패척결 대상 1호`가 됐고, 백방으로 구명운동을 펼쳤으나, 도움의 손길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사필귀정`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배신·인간에 대한 실망·억울함`을 토로하는 기자회견을 했고, `망한 기업인의 최후`가 흔히 그러하듯이 자결로 생을 마쳤다.

새정련에서는 이번 사건을 정부·여당 공격의 호재로 삼고 있으나, 성 전 회장이 참여정부시절 2차례 특사를 받기 직전 32억원이 수차례 걸쳐 인출돼 알 수 없는 곳에 쓰인 사실을 검찰이 계좌추적으로 발견했으니, 야당도 떳떳한 입장은 아니다. 그가 돈 뿌리지 않은 정권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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