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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이 너무 안맞다

등록일 2015-04-03 02:01 게재일 2015-04-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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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97년 토질 개량사업에 착수했다. 농가에 부담을 주지 않고 전액 정부 재정으로, 토양의 산성화를 막고 지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토질조사를 해서 산성도를 측정하고, 이런 토질에는 어떤 성질의 비료를 얼마만큼 시비하면 최상의 토질을 유지할 것이라는 진단을 낸 후 그에 맞는 비료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농업강국들과의 FTA를 시도하는 시기여서 정부가 토질개량사업을 주도해 농업경쟁력을 높이려 한 것이다.

토질 개량용 비료의 공급은 3년마다 실시하고, 공급되는 비료는 석회질과 규산질인데, 석회질 비료는 주의할 점이 있다. 퇴비와 혼용하면 비료의 효과가 떨어지고, 과다 시비를 하면 흙을 굳게 만들며, 인·아연·마그네슘·붕소 등 다른 영양소의 효과를 감축시키고, 질소비료와 혼용하면 질소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그래서 3년 시한을 두고 시비토록 한 것이다. 지나친 석회질 시비 때문에 농토를 황폐화시킨 사례가 러시아에서 있었다. 처음 몇 년 간은 농사가 잘 됐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토지가 단단하게 굳어서 농토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이다. 석회질의 성질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탓이었다.

토질개량용 비료의 무상 공급은 부작용도 있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신청을 하고 3년 후 비료를 받게 되는데, 농촌의 노인들이 `신청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비료를 찾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많은 양의 비료가 그냥 쌓여 있었다. 2012년 3월 경북 김천시 구성면의 이장 A씨가 농협으로부터 받은 토질개량용 비료 중 절반 가량을 자동차로 유출시켰다가 농민의 신고에 의해 다시 회수하는 소동을 빚었다. “공짜로 주는 것이 뭐 좋은 것이겠나”라는 불신감에서, 신청 농가의 절반 가량은 찾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은 농민들의 토질개량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높아져서 적극적으로 개량제를 수령하는데, 이번에는 공공기관들이 불협화음을 냈다. 농사란 `때를 놓치면 실패하는`사업이어서 파종과 시비를 절기에 맞게 해야하는데, 비료 공급도 파종시기에 맞추지 못하면 헛일이다. 전에는 비료 공급을 지자체들이 맡았으나 지금은 농협이 발주에서 공급까지 주도하면서 혼선이 빚어진다. 남부와 북부 기온차에 따른 공급시기 조절도 제대로 못해 너무 늦거나 아예 오지도 않는 경우도 있어 시비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안동 B농협은 이미 밭갈이를 마치고 감자 등 밭작물을 심은 후에 비료를 배포해서 원성을 샀고, C농협은 비료 발주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4월 중순께나 배포할 것이라 한다. “신청 발주 등을 전산시스템으로 개선해 신속 정확히 비료를 살포토록 했다”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하지만 지방에서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으니,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아서야 어찌 농업경쟁력을 제고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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