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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안에서의 문화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5-03-03 02:01 게재일 2015-03-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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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호의적이고 흥분할 만한 안동에 대한 이미지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안동식혜`를 택하겠다. 열두 살, 고향인 그곳을 떠난 이후로 안동식혜 맛을 잊은 적이 없었다. 나이 드는 탓인지 어릴 때 접했던 그 맛이 몹시 당겼다. 궁하면 구하고 급하면 나서렷다. 난생 처음 안동식혜 담그기에 도전해봤다. 늙은 엄마에게 달려가 부탁하기에는 염치없고, 솜씨 좋은 올케나 언니는 너무 멀리 있고. 일단 급한 대로 전화통을 붙잡고 언니에게 제조법을 물었다. 그래도 못미더워 인터넷 검색까지 보탰다.

고두밥을 짓고 무와 당근은 채 썰었다. 불려 치댄 엿기름물에다 고춧가루와 생강도 우려냈다. 썬 재료와 뜨신 밥을 엿기름물에 섞어 설탕 간을 한 후 하루를 삭였다. 놀라워라, 어릴 때 먹던 그 향과 식감이 코와 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납작하게 썬 배와 사과를 곁들이고 볶은 땅콩까지 고명으로 얹으니 얼추 식혜 모양새가 나온다.

한데 나보기에 만족스런 첫 작품이 아들에겐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먹는 시늉만으로 완곡하게 거절한다. 비주얼 면에서 안동식혜는 그리 산뜻한 편은 못 된다. 심하게 말하면 `꿀꿀이죽` 같다거나, 걸러서 표현해도 `물김치` 같다고 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식욕을 자극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접할 기회가 없었던 아들에게 부담스런 음료인 것은 당연하다. 가자미식해나 삭힌 홍어를 첫 대면할 때의 심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지만 일단 그 맛에 적응하게 되면 좋아지게도 된다. 그 과정을 거친 남편이 비교적 잘 먹어줘 다행이지만, 내 식욕에 겨워 한 통이나 담근 식혜 앞에서 아들 입맛을 접수하지 못한 건 못내 아쉽다.

문화란 그런 것이다. 태생과 함께 한 것이라면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중에 경험한 문화가 껄끄러우면 일단 저어하게 된다. 거기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강요의 눈총 대신 배려의 눈길로 기다려줘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거기서 그쳐야 한다. 완벽히 타자를 이해하거나 이해시킨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후천적 문화 경험 앞에서 언제나 취향이 우선한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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