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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 침탈` 역사

등록일 2015-02-25 02:01 게재일 2015-02-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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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야욕이 너무나 집요하다. 독도 밑에는 그 수량을 헤아릴 수 없는 에너지원이 들어 있고, 수많은 어종들이 몰려드는 천혜의 어장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독도에 살던 강치들을 일본 어부들이 때려잡아 항공기 기름으로, 군복으로, 식량으로 사용해 멸종시켰던 그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조금도 없다.

일본 `양심의 소리`였던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아베정권은 여전히 외면한다. 일본의 한국침략의 잘못을 사죄하지 않고 위안부 성노예 강제동원을 애써 부정하려 하다가 국제사회의 직격탄을 맞지만 독도침탈에 대한 반성은 없고, 오히려 영유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만 높인다. 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땅이라 적고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식을 갖고, 일본 정부는 차관급을 보내 `격려`하며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자고 한다.

독도문제의 본질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사와 러·일전쟁사와 맥을 같이한다. 1904년 2월 23일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체결해`일본 군대가 한반도에 주둔할 부지를 확보`한다. 같은 해 8월 22일 제1차한일협약을 체결해 조선의 외교권과 재정권을 박탈한다. 군대주둔권과 외교권 재정권을 확보한 일본은 이미 한반도 침탈 야욕을 거의 다 성사시켰다. 그리고 그 해 9월 일본은 러·일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다. 울릉도와 독도는 바로 러일전쟁의 전초기지였다.

울릉도와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기 위한 현지조사를 실시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 40호`란 것을 만들어 독도를 일방적으로 일본영토에 포함시켰다. 그런 조치는 비밀리에 추진됐기 때문에 조선정부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에 대해 한 일본인 대학교수는 “당시 한국은 나라 전체를 뺏기는 상황이라 바위섬 영유권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다른 양심 교수는 “독도 침탈은 마치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 귀중품을 들고 나오는 것과 같다”고 했다.

1905년 11월 27일 일본은 제2차한일협약(을사보호늑약)을 체결하고, 1907년 7월 정미조약을, 그리고 그 해 8월 통한의 한일합방조약이 만들어짐으로써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독도는 일본땅이 돼버렸다. 그런데 해방 70년이 되는 지금까지 일본은 `독도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미국 식민지였던 쿠바가 독립될 때 미국은 쿠바의 부속 도서인 후벤투드섬도 돌려주었다. 그 당연한 일을 일본은 거부한다.

일본이 올해 2월 22일에도 `독도의 날`기념식을 하자 우리 외교부는 일본 총영사를 불러 따졌고, 경북도와 포항시 등은 머리띠를 매고 강력히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조용한 외교가 한계에 왔고, 목소리를 높여 국제사회에 호소할 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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