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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의 슬픈 자화상

등록일 2015-02-11 02:01 게재일 2015-02-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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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득편집부국장
며칠 전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중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세월의 무상함을 피할 수 없는지,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앞이마가 훤하게 드러났고, 눈가에 주름도 꾀 깊어 그동안 겪은 온갖 풍상을 얼굴로 다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린 차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래 애들은 다 컸고…”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응, 군대 갔다 와서 지금 놀고 있는데 취직이 안 돼 걱정이다”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그는 “자식을 대학만 졸업시키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해… 벌써 집에서 빈둥빈둥 논지가 2년이 넘었는데, 직장 구할 생각을 안 해 정말 미치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넌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어디 취직자리 좀 알아 봐줄 수 없나”라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 친구는 요즘 집사람과 함께 자식 취직걱정 때문에 매일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라고 했다.

요즘 50~60대 부모들의 공통된 걱정거리라고 생각된다.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대학은 필수고, 직장까지 챙겨주고, 결혼까지 시켜줘야 부모가 자식한테 해줄 수 있는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대가 변해도 많이 변했다. 흔히들 말하는 `베이비붐`세대가 겪는 똑같은 고민이기도 하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과 같은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활고를 책임지고, 자식 공부시키는 일, 노부모 모시는 일, 온갖 가정사를 다 챙겨야 하는 고달픈 일상이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이 같은 현실을 터놓고 얘기할 수도 없다. 결국 퇴근 길 소주잔을 기울이며 애환을 달랠 뿐이다. 어쩌면 이 시대의 마지막 `슬픈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 가장들은 요즘 집에 가서도 큰 소리 치지 못한다. 집사람의 입김이 워낙 세진 것인지, 아니면 나약해진 자신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정에서조차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돈을 많이 벌어주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이 각박한 봉급쟁이인 이들 세대들은 이제 설 곳이 없다. 직장에서 정년을 앞두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정년을 하고 직장을 떠났다. 그나마 아직도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상당한 행운아다.

요즘 들어 처, 자식한테도 부쩍 눈치가 보인다. 혹여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면 밥 달라고 하지도 못한다. 차라리 굶는 게 훨씬 편하다. 집사람의 잔소리가 더 스트레스다. 절친이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핀잔을 주지만 어디 나뿐만 겪는 일이겠나. 주변 동료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슬픈 일상이다.

베이비붐세대는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로 유신독재와 고도의 경제성장,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5공 시대를 거쳐, IMF경제위기를 온 몸으로 겪은 `굴곡의 세대`이자 `위기의 세대`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6·3세대와 386세대,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 취급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고개 숙인 아버지들이다. 문화적으로도 찬밥신세다. 텔레비전을 켜도 그들이 보고 즐길 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아무도 그들의 마음이나 그들의 욕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신나는 일이 없을까 하고 다시 밖으로 눈을 돌려봐도 이들이 갈 만한 공연장 하나, 쉴 만한 쉼터 한 곳 없는 게 현실이다.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일했건만 처, 자식들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비운의 세대, 20여 년 월급쟁이 생활 끝에 길바닥으로 내몰리는 구조조정 세대인 것이 이들의 현주소다.

그래도 필자는 조금 나은 편이다. 돈을 못벌어 줘서 집사람으로부터 비록 구박을 당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그렇게 찬밥신세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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