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쿨하게 도다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5-02-09 02:01 게재일 2015-02-09 19면
스크랩버튼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 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원망도 은혜도 한가지로 희미해진다. 아등바등 일희일비하는 것의 무소용함을 깨쳐주는 말이렷다! 요즘의 `쿨하다`라는 말도 이 속담과 일맥상통하리라.

지인들과 아침 바닷가에 나갔다. 사진도 찍고 해풍도 느낄 겸 떠난 짧은 여행이었다. 흐린 날의 포구는 고즈넉했다. 자맥질과 날갯짓을 번갈아하는 살찐 갈매기들만이 그 적요를 기분 좋게 깨우는 정도였다. 방파제 입구, 그물을 손질하는 할머니의 등이 보였다. 바다를 향해 앉은 초로의 등짝에 고달픔의 흔적이 서렸다. 앞섶이 투영된 삶이 곧 등의 생애가 아니던가. 그물에 낀 바다풀을 걷어내는 할머니의 비껴 앉은 등짝에 대고 조심스레 셔터를 누른다. 찰칵, 소리에 놀란 할머니가 돌아보았다. 렌즈를 들이댄 무례가 들킬세라 괜스레 말을 걸어본다. 도다리 잡는 그물을 손질한다고 했다. 도다리는 겨울이 제 철이라고 했다. 그물만 현처럼 뜯고 있던 할머니는 헤퍼진 객들의 추임새에 맞춰 잘도 설을 풀어놓는다. 내친 김에 도다리를 먹어볼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기 뭐 어렵나, 있는 밥에 회 쳐서 묵으면 되지.`한다.

작업복을 훌훌 벗어던진 할머니가 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후하게 친 회와 매운탕을 후딱 끓여주고 바쁘다며 다시 나가버렸다. 알아서 먹고 가란다. 따신 배를 두드리며 만찬 값을 치르러 포구로 나갔더니 그물 있던 자리에 할머니는 없다. 차려준 일만 기억하지 값 받을 생각은 멀리도 두었다. 한참 뒤에 나타난 할머니는 그새 바다에 나갔다 왔단다. 값을 치르든 말든 참으로 쿨하시다.

바다 앞에 서면 몸은 바지런해지고 맘은 헐거워지나 보다. 오래 일렁이고 자주 질척여 본 자만이 흔들림에서 자유롭다. 그 고비를 넘기면 만선의 기쁨조차 영원한 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밀려드는 파도를 마주하지 않은 생이 어디 있을까. 바다의 온갖 의성어를 가슴에 가두어 `쿨함`의 의태어로 키워낸 오도리의 할머니. 아무리 봐도 쿨함은 생의 파랑주의보를 맛본 자의 여유다. 잠 설치고 나온 보람이 있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